2020/07/20 23:00

태어나서 가장 기분 더러웠던 악몽 20-07-20 흘러가는 시냇물 (잡담)

내가 지금까지 꾸었던 꿈 중 가장 현실적이고(원래 악몽이라는 것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기에 이것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역겨운 집합이긴 하나 여기서 말하는 현실적이라는 건 실제로 일어난 것 같은 공포감이었다) 지금까지 꾸었던 악몽보다도 역겨웠다.

한편 역겹기도 하지만 서글프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무튼 상황은 이러했다. 나랑 부모님 이렇게 셋이서 초등학생 시절 학교 옆의 작은 공원처럼 생긴 장소를 걷고 있었다. 물론 거기는 공원은 아니고 오히려 한국의 해안 가였다. 아무래도 느낌상 동해 인근 해안으로 보였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래도 나와 부모님은 계속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아버지는 “어서 양말을 벗고 흔들면서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우리 모두 흰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직감으로 ‘항복 깃발’을 의미하듯 양말을 들고 걷는 걸로 생각했다.

나는 뭔가 불합리하고 이상하다 느꼈지만 그런 생각은 바로 사라지고 이내 양말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표정에서 체념이 느껴졌다. 마치 꿈을 1인칭이 아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1인칭과 3인칭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다. 놀이터의 놀이기구 같은 것들이 가끔씩 보이는 꿈속의 해변 근처에 커다란 바위를 뒤로 하얀색 커튼이 보였다. 이는 마치 영사기 혹은 빔 프로젝터로 상영하는 영화 관람이었는데 영상은 도무지 이 나라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그 옆을 (양말을 양손에 들고 흔들면서)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영상은 아무래도 중국 혹은 북한의 것으로 보였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노랫소리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그러나 기계적인 공산권 국가의 영상들이 흑백으로 보였으며 그 영상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직 커다란 바위에 하얀색 천 혹은 커튼이 있고 거기에 영상만 나오는 식이었다. 그러나 영상을 틀었다는 것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인데 그 생각은 곧 밝혀졌다.

왜냐면 갑자기 서치라이트가 나와 부모님을 비추더니만 영화촬영장에 앉은 감독처럼 앉아있는 누군가가 소리쳤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감독처럼 생긴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북한 혹은 중국 그것도 고위급 간부로 보이는 인민복과 군복을 섞은 복장을 입고 외모도 험상궂게 생긴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땅에 북한 간부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상황은 내게 좋지 않았다. 아무튼 감독 혹은 간부로 보이는 사람 옆의 호위 병사들은 곧바로 부모님을 포박하고 내 멱살을 잡은 다음 간부 앞으로 끌고 온다. 그 사람은 내 앞에서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곤 부모님과 나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길을 가라고 한 다음 나와 부모님 사이를 떨어뜨리곤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어디론가 가라고 한다.

그렇게 겁이 질린 채 나와 부모님은 어디로 가는데 멀리서 살짝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가 들렸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는 ‘야, 너 일로 와봐!’였다. 나는 곧바로 거기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무섭게 생긴 덩치 큰 간부였다. 그는 내게 ‘너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냐?’라고 말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무시무시한 폭력이 나를 엄습했다. 아무 이유 없이 한손으로 내 볼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30번은 넘게 따귀를 맞았는데 꿈이었음에도 그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럽고 험악한 폭력이었다. 무엇을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내게 이런 폭력을 가했다. 오죽했으면 분명 꿈이었음에도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한 절규를 질러댔다. 비슷한 절규는 드라마 ‘각시탈’ 주인공 이강토(주원)가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내뱉는 울음이나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악당 장경철(최민식)이 주인공(이병헌)의 복수에 고문당하며 울부짖는 비명소리(발목 살이 잘려나가는 장면)와 맞먹는 괴성이었다.

그 순간, 배경은 바뀌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청록색 벽과 바닥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복도였는데 나는 두 팔이 묶여 매달려 있었고 그 간부는 계속 중얼거리며 내 옆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어떤 영상이 나온다. 분명 여기는 대한민국인데 나는 이상한 인간들에게 납치당해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 영상은 마치 내게 무언가를 말하는 거 같았다. 여러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들은 해맑게 웃으며 아무 문제없다고 능청스럽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마스크를 쓰고 자기 생활을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틈날 때마다 마치 화면을 향해 웃음을 짓는다.

마치 실시간으로 복도에 갇힌 나를 비웃고 혹은 나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냐하면 내 옆을 서성이던 간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도 ‘부모...’, ‘너는 아무도 몰라’, ‘너만 알고 있어’, ‘너 뿐이야’라는 한국어를 분명 지껄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서 울려 퍼졌는데 온 몸이 뻐근하고 아파지면서 괴로운 가운데 내 시선은 음침한 복도가 아닌 내가 갇힌 어떤 건물을 비추더니만 다시 화면이 바뀌었는데, 그것은 그냥 이 나라 대한민국 위성사진이었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밤중에 찍은, 북한 땅은 꺼져있고 한국, 일본, 중국은 밝게 빛나는 그 사진’이었다.

분명 꿈이었으면 내 생각대로 움직여야하고 어쩌면 내가 만든 창조물들이 튀어나와 나를 구해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러나 그러한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항상 내게 불리한 일만 일어난다. 현실도 피곤한데 꿈에서는 더 피곤하고 괴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번엔 정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도(?) 눈치 채는 가족도 없었다. 가족들은 이런 걸 그저 개꿈이라고 무시하라고 하고 역으로 나보고 생활을 더 긍정적으로 하라는 잔소리만 할 것이기에 다행이라 여긴 것이다. 아무튼 깨어난 직후 들었던 기분은 태어나서 가장 기분이 더러웠던 꿈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기분도 들었던 점이다.

덧글

  • Megane 2020/07/21 00:25 # 답글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드셨던 거 같아요. 꿈이 참 스펙타클...
    저도 가끔 가족이 어디론가 납치된다거나 피철철 장기자랑 등등 꿈을 꿀 때가 간혹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이렇게 사는거죠 뭐. 그냥 꿈은 꿈이려니~하고 사는 게 편해요. 100% 편한 건 아니지만서도... 참고로 저는 악몽을 꿀 때면 달달한 음식을 먹는 편인데, 뭐 많이 먹는 건 아니고 작은 쇼트케이크나 달달한 과자같은 걸로 당분을 채우고 잡니다. 그러면 가끔 꿈이 안 꾸어져서 편하게 잠들 때도 있긴 합니다. ^^;;;;;
  • K I T V S 2020/07/21 00:33 #

    넵, 의미를 부여하면 그거대로 피곤해지고 정말 마음이 더 불안해지고 피곤해지더라고요. 좋은 꿈을 꾸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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