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01:09

<서평> 헐버트의 꿈, 조선은 깨어나리!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책 표지)



*헐버트의 이름은 교과서에서 지나가듯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였다. 그 외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자의건 타의건 개인의 영달이건 도움을 준 외국인들은 많다. 악당으로도 불리지만 명백히 루스벨트와 처칠을 도우며 일본과 싸우던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과 조선 사람들이 법정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던 후세 다쓰지 판사님이라던가, 그 유명한 언더우드와 석호필(스코필드), 배설(어니스트 베델)도 있다. 일본에 의해 추방된 셔우드 홀도 있다. 그에 비해 헐버트의 이름은 호감이 가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위화감도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이신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님의 말에 따르면 다른 외국인 운동가분들도 소중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기셨지만 저자 분의 자긍심 때문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벨 에포크’ - 어둠의 제국주의 - 누군가에겐 영광이요 누군가에겐 절망이 공존했던 시대에서 제3자와 제4자의 입장에서 조선, 대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타심이 넘치는 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헐버트를 띄우려고 쓴 것 보다는 헐버트 본인의 회고록과 편지를 읽어 나가는 것이 이야기 흐름의 중심이기에 저자의 글은 그 사람을 알려주는 것으로만 알아도 족하다. (즉 책의 상당 수 자료는 헐버트 본인의 글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과 글이 대부분이라 일단 헐버트 박사 본인의 성격은 확고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구는 그 역시 감리교 선교사였기에 한국 사람들에게 약팔이 하려고 처음에 좋게 다가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행이 그런 관점은 거의 없지만) 하지만 웬만한 서양 백인들은 당시 시누아즈리에 이은 자포네스크 문화의 영향력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와 청나라를 쓰러뜨린 (영국과 미국의 지원이 있었고 일본 역시 간당간당한 전쟁이었다고 하지만) 업적(?) 때문에 일본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런 일본에 패배한 대한제국-조선왕조는 경멸적인 시선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이 책에선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를 알리지 않은 당대 조정과 지식인들의 책임도 있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헐버트 선교사 혹은 박사께선 도중에 살면서 모든 것을 때려치울 법한데도 끝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종황제를 걱정하고 그를 밤새 지킨 적도 있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당했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다.

마치 일본 문화에 감화되어 귀화한 라프카디오 헌(고이즈미 야쿠모)이나 과거 조선 왕조 사람이 되신 네덜란드의 사략선장 벨테브레이 그리고 영화 속 인물인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 역)처럼 그 나라에 빠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헐버트는 베델이나 스코필드처럼 귀화까진 안 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눈여겨 본 문화는 지금도 국뽕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겐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지만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거나 국까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시시하게 볼 수 있는 조선 왕조에서 만들어진 문화유산들이었다. 

나에게 흥미를 돋게 한 부분은 초반에 헐버트가 인재를 양성하는 부분이었다. 어쨌건 근대화는 타의에 의하건 외세(그것이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일본까지)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여기엔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최초의 근대학교라 할 수 있는 육영공원(어린이대공원, 쥬라기 공원의 그 공원이 아니다!)을 세우다 현실적인 문제(자금, 관리의 부패)를 겪고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점과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교육문화를 개혁하려고 노력한 점이 감명 깊었다. 현재 한국에서 조선 말기를 판단하는 기준점은 ‘뭘 해도 안 될 운명이다’와 ‘노력은 했는데 외세가 모든 것을 망쳤다’라는 관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상황에서 헐버트 박사의 기록은 전자(저주스러운 자학)는 아주 조금 반영하고 후자(타국에 대한 증오와 지나친 피해망상) 역시 절반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구한말과 독립운동시기의 유명한 인재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헐버트의 인맥과 영향력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구한말 인물은 김홍집과 주시경인데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는 김홍집과 오늘날 한글을 있게 한 가장 큰 이유가 주시경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이 한글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세 번째는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선진국이자 지역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우리의 것을 어느 정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것이겠지만 그 사이에 있는 두 번째 이유로는 그 전까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던 한글을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게 노력한 주시경 선생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주시경에게 근대식 도시사회의 일자리를 주고 그를 제자로 키워낸 사람이 바로 헐버트 박사라는 점이다. 헐버트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한제국의 교과서인 ‘사민필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 조선은 분명 세종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자국민을 위해서 과학적이고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냈는데 양반이라는 중국을 사랑하는 바보들이 한글을 무시하고 제대로 써먹지 못하여 한국의 지식은 정체되었다”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것도 헐버트의 비난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다른 말을 남기고 싶다. 요즘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틀어 역사의 재평가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엔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있다. 이 중, 조선왕조에 대한 재평가는 사회 분위기 상(조선왕조를 비난하면 자동으로 일본을 긍정하는 문화가 엮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거대로 문제다) 부정적인 재평가는 주류 여론이 되기 힘든 점도 있지만 조선 시대의 기록문화 때문에 예외 사례가 많기에 함부로 일희일비할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언문이라는 말도 멸칭이 아니며 많은 양반들이 한글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고 조선 지식인들이 한글을 억압하고 한문만을 고집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헐버트의 사민필지 그것도 대한제국의 교과서가 되기도 했던 이 책에선 육영공원을 운영하다 좌절한 사례를 겪은 헐버트의 하소연과 주변 관리들의 태도 그리고 그 밑에서 배움을 다지던 많은 제자들(그 중엔 앞서 말한 주시경도 있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초대 부통령 이시영도 있었으며 그 무시무시한 매국노 이완용도 있었다)도 스승의 고충을 느꼈을 거기에 조선왕조는 한글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재평가에 찬물을 끼얹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물론 헐버트가 외국인이고 나름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과장하며 말한 것도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분명 당시 헐버트의 눈으로는 19세기 말의 대한제국 안에서도 여전히 한글을 고집하는 모화사상이 가드한 지식인들이 상당 수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고 이것은 이후에 현대까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적인 부담감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아니면 조선 후기에 잠깐 한글을 장려하는 움직임이 중인들이나 몰락한 양반들에게 있었을지 몰라도 19세기가 되면서 다시 조선 지식인들은 한문에만 집착하는 경직된 사람들이 됐다라고 해석하면 되려나?

굳이 자국우선주의가 아니더라도 헐버트 입장에선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조선의 교육개혁이 급하며 이를 위해선 한국에서 자생한 문화를 사랑하는 교육을 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조선왕조의 모화사상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동감하는 편이다. 그러나 청나라의 내정간섭도 그렇고 헐버트가 초반에 조선왕조에서 보인 아쉬운 감정은 책에선 그리 심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주된 관심사는 헐버트의 일본 때리기에 있으니까! 그나마 좌절해도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생각 든다.

아무튼 헐버트 개인의 고백도 그렇고 저자인 김동진 회장님의 주장도 그렇고 책에서 구한말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일본과 서구 열강이 모든 것을 망쳐서 이 꼴이 됐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 관점은 풀어내기엔 매우 힘든 난이도라 생각 든다. 고종이나 구한말 지식인들의 안타까운 오판도 팩트이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잔혹한 행동도 팩트다. 그리고 지나치게 집착하면 마음은 피폐해지기에 최대한 미래를 생각하며 결론을 내려야할 주제다.

아무튼, 헐버트 개인으로 보면 타국의 군주인 고종을 변호하며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점(이에 대해 한국이 줄을 잘못서서 망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무슨 짓을 해도 한국은 살해당할 운명이라는 주장도 팽팽히 맞선다. 후자가 맞으면 사실 과거사 해석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미래를 보상받기 위해선 주변이 모두 적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의 생각이므로 비판해도 된다)은 대단했고 흔히 네덜란드까지 가서 망신당하고 누구는 분해서 돌아가시고 절망만 가득 가지고 왔다는 헤이그 특사를 도운 사람도 정황상 헐버트 박사가 유력하다는 자료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헐버트 정도의 좌절을 겪으면 폐인이 될 법도 한데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것인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간직했던 것인지 끊임없이 외교적으로 한국을 돕기 위해 노력했으며 해외의 한인 청년들에게 ‘낙심은 할 수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보자’라고 다독여주시기도 했다. 살기 위해 결국 일본제국의 신민이 되기로 한 독립운동가분들도 있고 대한제국 패망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일이 늘어났는데 일본제국이 끝없는 욕심으로 스스로 파멸하고, 한때 일본을 찬양하던 시어도어를 저승에서 주먹으로 한방 먹이고(이는 어쩌면 외교사적으로 시어도어 최대의 실수 일 수 있다. 어제의 동료 일본이 오늘의 적을 만든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허용한 루스벨트 개인의 와패니즘 성향도 있었으니까) 전임 대통령이 틀렸음을 입증한 프랭클린과 해리의 행동으로 우리나라는 구원받았다.

물론 외교적으로 노력하신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외교적 인정을 받지 못한 임시정부(심지어 헐버트와 이승만조차 충격을 금치 못했으니)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책에선 이념갈등이 내분의 원흉이라 보았지만 굳이 이념갈등만이 문제였을까? (이미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무력으로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도 지구상에서 소멸 된지 오래인 1920년대 이후로는 말이다, 애초에 이념갈등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이후 일어난 역사를 보면, 오히려 이것을 너무 간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 든다)

그래도 그는 미국인에겐 영웅중의 영웅이지만 구한말 고종황제 입장에겐 공포의 대왕 그 자체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의 진실게임에서 승리한 점(책에선 루스벨트를 굴복시켰다고 표현하지만 내가 볼 땐 그건 자화자찬의 느낌이 난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일본을 좋게 생각하여 한국을 버렸다고 시인한 자료를 확보한 점에선 진실추구에서 승리한 진정한 학자라고 볼 수 있다)에서 누가 보면 잉여 짓이나 다를 법한 행동을 일생을 바쳐 노력한 점을 존경하고 무엇보다 이승만을 도와 끝까지 미국 조야에서 외교 독립운동을 지속했던 점에서 정치적으로 모함을 받고 있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을 공격하는 것을 방어하고 오히려 그것을 상쇄하는 증거가 호머 헐버트 박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3.1운동을 ‘일본을 무찌르지 못해서 혁명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그건 지엽적인 것으로 밖에 혁명을 생각 못하는 것이다. 이 항쟁은 제국이 아닌 민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개인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개인의 행복 의지를 세계로 넓힌 운동이니 스스로 일어난 민주 혁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승만 대통령도 독립운동가 시절 미국에서 3.1 운동을 기억하며 혁명(Revolution)이라고 높이 격상시킨 점과 그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의 전 단계인 한성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이거는 뭐 건국절과 광복절 논란과 전혀 상관없다!) 이승만의 말도 부정해야 하는 오판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아무리 국제사회가 냉혹하다고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경제적 관계 때문에 허망하게 관계를 끊은 중화민국(대만)에 대한 태도나 전 세계의 미승인국 중 중공과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국가랑 친한 미승인국에 대해선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볼 때 모든 관점은 현실성도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립운동가가 바라던 주권국가 대한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민사회가 아닌 고종황제 혹은 양반들이 부르주아처럼 살아남아 신민들을 통치하는 오스트리아나 독일, 오스만, 러시아 같은 체제가 아니었을까’하고 두려워하는 시선이 극소수나마 남아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한 조선 사람들이 추구하던 진정한 자유는 그냥 일본이 싫어서였는지 이미 그 때부터 2020년대 수준의 현대 시민사회를 꿈꾸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잔인한 처사일지 모르겠지만 전근대 혹은 근대 초기 사회의 한계성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엔 미국과 영국 같은 협상국-연합국에서조차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나빴다. 서구 열강들의 인식도 이러했는데 식민지 조선-옛 대한제국이라고 다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튼 초반에 언급되는 사람이 주시경이고 중반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고종황제라면 후반에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자주 언급된다. 사진에서도 헐버트 박사와 가장 많이 동행한 사람은 바로 이승만이다. 그나마 미국 정계를 헐버트와 함께 설득을 열심히 해서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 초기 역사를 이끈 점은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헐버트 박사님의 불행은 좌절의 연속으로 생고생을 하여 식민지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재탄생하는 기쁨을 맛보았음에도 그 땐 돌아가시기 직전이라 유서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야위셨다는 점과 결국 고종 황제의 내탕금을 되찾지 못한 점 그리고 스스로 한국이 분열되어 버린 점을 지적하고 돌아가신 점이다. 그는 분단의 원인을 일본으로 보았다. 원론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일본이 쟁탈전만 벌이지 않았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한편으론 헐버트와 안중근 조차 그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도중에도 일본이 이기길 바라고 있었고 러시아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더 심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 조선 사람들도 대부분 갖고 있던 인식이었고 이는 19세기 구한말은 사실상 모든 나라가 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에 힘을 보인다.

나는 그냥, ‘어째서 우린 노력해도 망할 수밖에 없었을까 21세기에 이런 일을 다시는 겪으면 안 되겠다. 그게 반복되면 지금 사는 내 인생은 끝장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며 생산적으로 마무리를 지어야겠지만, 이것조차 사치가 아닐까하는 걱정도 든다.

처음엔 암울한 이야기만 있을 거 같아 읽기 꺼렸지만 그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신 헐버트 박사의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이 글을 마친다.

덧글

  • Megane 2020/07/15 14:15 # 답글

    우리는 아직도 -이즘의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대를 거치며 대상과 내용이 변하기는 합니다만...
    지금도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든가, 네오 나치즘, 페미니즘 등등과 싸우고 살죠. 그런 점에서 사상의 대립을 간과한 것이 지금의 혼란한 대한민국이 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의 선교사님들이 좋은 일을 한 건 사실 맞는 말이긴 하죠, 교육, 의료 등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한국의 기독교(특히 개신교쪽)의 우경화를 이끈 사상적 기반을 준 것 역시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옛날 평양 대부흥 사건 때는 선교단체들의 우민화 정책에 대한 회개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건 그 때 뿐이었고, 결국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반공주의의 우세가 드러나게 된 것은 두고두고 기독교의 치부가 될 겁니다. 물론 저도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승만이라는 개인의 이후 행보를 보면 정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맞나하는 생각은 지금도 버릴 수 없습니다만... 게다가 박정희의 군사 구데타 이전엔 이기붕 일당의 자유당 정권의 입김에, 쿠데타 이후엔 정권의 개가 되어 버렸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빌붙어 꿀을 빨았던 개신교의 발전 과정을 보면 참... 그래도 혼란한 세계 정세 속에서 이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무언가라도 도움이 되려고 했던 헐버트 박사님께는 정말 감사 뿐입니다.
  • K I T V S 2020/07/15 19:24 #

    저는 다른 의미로 이승만을 까면 헐버트를 까게 되고 역시 고종을 까게 되면 헐버트를 까게 된 거 같은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헐버트 박사는 독립운동사 전반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제외한 민족주의-국가주의-자유민주주의형 운동가들을 마냥 비난하기엔 뒤편에 헐버트 박사의 존재때문에 시각이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신 그분에 대해, 뭐라고 평할 수가 없고 단지 대한제국 시기 때 여전히 선비들이 한글을 천시했다는 것을 밝혀주는 증인으로써 호머 헐버트 박사님을 봅니다. 이것에 대해 최근 인기를 끌고 계신 유튜버님께 이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드리고도 싶습니다.
  • Megane 2020/07/16 17:37 #

    저는 헐버트 박사님도 사람인지라 완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헐버트 박사님 덕분에 과거 조상들의 모습을 재조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신 것만은 부정할 수 없죠. 저는 이승만을 깐다고 해서 헐버트 박사님의 업적이나 명예가 실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도 독립운동사에서의 역사만큼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 2020/07/16 20: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20/07/16 23: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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