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18:51

<서평>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권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책 표지)


*1권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2권도 읽을 수 있어 기뻤다. 가장 궁금해 하던 춘추시대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기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중요한 인물들은 누구누구가 있었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다만 만화라는 매체의 한계 상 역사를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훈련서적으로 생각하거나 이미 역사를 통달한 역덕후들에겐 다른 부분이 있는지 검사하는 식으로 읽는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해야 했다. 나에겐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맛보자는 맛으로 읽었다.

일단,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춘추시대에서 춘추라는게 무슨 뜻일까?’에 대한 생각은 아쉽게도 이 책에선 알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자가 편찬한 교훈서적 ‘춘추’에서 따온 명칭이라는 걸 알아냈다. 이 책도 원래 노나라의 역사서가 따로 있었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인해 사라졌고 공자가 엮은 교훈서적만 남아있는 것이 전부다.

또 원래 각 나라와 제도도 사기에 들어있는데 이화백은 얇은 학습만화라는 매체에서의 제한적인 연출 한계 때문에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들의 인생과 그 사람이 속한 나라가 강대해졌다가 쇠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친다. 하지만 난 이해한다. 길고 긴 시리즈물에서 이 정도로 압축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그런 점은 넘어가야한다는 것을.

사실상 2권의 내용은 춘추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거라 볼 수 있다. 노자와 장자는 프롤로그에 가깝고 사마양저와 손무로 초반을 이끌어나간다. 원래 사마양저는 문관이었지만 갑옷을 입고 자신의 조국 제나라를 위해 장군이 되어 엄격한 군법으로 왕의 신하들도 거침없이 베고 반대로 병사들에겐 관대한 모습을 보여줘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얼마나 다른 장군들이 욕심을 부려 착취해댔으면 저런 기본중의 기본도 안 지키는 꼴이 되었나?’라고 생각했다. 전근대 모든 나라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손무는 그 유명한 손자병법의 저자이지만 역시 장군출신은 아니고 일개 농부라고 나온다. 하지만 오자서가 추천하고 오왕 합려가 적극 밀어주면서 뛰어난 전쟁 지도자가 된다. 그것도 힘없고 연약한 소녀들만을 데리고 그녀들을 살인기계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장난으로 여긴 궁녀 2명을 단숨에 목을 자르면서 ‘사람을 길들이는’ 부분이 섬뜩했지만 반대로 어느 상황에서도 뛰어난 리더가 훈련을 시키면 오합지졸도 정예병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원칙을 보여줬다. 허나 합려가 별로 신경 안 쓰는 후반부를 보면서 뭔가 안 좋은 기분도 들었다.


오자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한 사람이다. 이 책의 진주인공이라 볼 수 있다.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갚기 위해 다른 나라로 피신하며 힘들게 살다가 오나라에서 재기에 성공, 손무도 발굴하는 활약도 하고 합려를 왕으로 만들어낸다. 복수를 위해 열심히 악착같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단한 정신력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완전무결한 선인으로 보진 않았다. 당장 합려를 꼬셔서 어떻게 보면 멀쩡히 돌아가던 오나라 왕실을 피로 물들여 버린 것도 있고(그것도 친구가 된 청년 전제를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 물론 전제 본인도 그걸 알고 흔쾌히 받아들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점은 다르게 봐야겠다, 그 전에 오나라의 전후 사정을 보여주며 합려가 합리적으로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으니) 초반엔 그 합려조차 오자서를 의심할 정도로 오나라를 이용해서 자신의 옛 모국 초나라를 멸망시키려는 행동을 대놓고 보인 모습, 복수를 위해 아예 초나라의 온 백성을 잔인하게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농락하는 것을 두고 본 점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달이 떠오르면 차고 다시 달이 지는 거처럼, 오자서가 몰락하는 이야기는 월왕 구천과 월나라의 충신 범려의 이야기기도 했다. 끈기 있게 치욕을 참고 복수에 성공하는 구천과 그 구천에게 복수를 다짐했지만 결국 타락하여 치욕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자살한 오왕 부차, 그 부차를 현혹하여 오자서를 죽게 한 백비(자신은 초나라에서 망명한 주제에 자신이 오나라를 망쳐버렸다. 물론 범려의 책략으로 타락한 것도 있지만 백비가 청렴했다면 그런 일이 없지 않겠는가?), 모함으로 자살하고 무덤조차 만들어지지 못한 오자서의 최후... 복수가 복수를 낳는 쓸쓸한 이야기를 본 셈이다. 사마천도 그러한 평을 남겼고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엔 범려도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겨 조용히 가족과 추종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장면은 그 쓸쓸한 마음을 크게 만들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공자의 일생으로 마무리된다. 공자는 처음에 프롤로그편인 노자의 이야기에서 노자에게 한방 먹는 것으로 먼저 등장했다. 그 전에도 1권에서 사마천에게 속삭이는 영혼의 모습으로 나오긴 했지만, 오자서의 죽음으로 쓸쓸해진 마음을 녹여주는 공자의 이야기였다. 물론 공자도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힘세고 굳센 육체와 학습정신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을 생산에 몰두하여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였음에도 세도 가문들의 멸시를 당해야 했고(공자의 일생일대 숙적인 ‘양호’가 등장하는데 아쉽게도 딱 두 컷을 빼고는 양호와 공자의 악연을 이 만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게 참으로 아쉬웠다. 나중에 양호로 오해받아 죽을 뻔 한게 다였다. 두 사람은 닮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거라도 서술됐으면 어땠을까?) 부패한 관리들 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각 나라들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도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열심히 키워낸 제자 중 자로는 너무 옳고 그름을 따지며 불의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고(젓갈이 되어 공자에게 보내지는데, 참 양아치같은 옛날 관리들... 이 역시 책에선 나오지 않았다) 안회는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죽어버리고 짧게만 언급되지만 아들이 공자 본인보다 일찍 죽었다고 나왔다.

그나마 자공이 부잣집 도련님이기에 공자가 죽을 때까지 일심양면으로 돕고 그 뜻을 전파해나가는 제자들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을 보아 그래도 공자의 사상이 퍼지는 데엔 ‘제자이면서 물주였던’ 자공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가 성공했던 일면엔 미축의 어마어마한 재력이 있었고, 역시 유표가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도 형주의 재력가인 채씨 가문이 있었던 거처럼... 모든 것에는 그것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물론 그러한 뒷이야기를 만화자체에서 알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쉽고 한편으론 간략하게나마 춘추시대는 대강 이렇다고 알 수 있던 책이었다. 이후의 예고편은 없기에 과연 이희재 화백이 사기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궁금하다.

가장 기대되는 에피소드는 춘추시대에서 그저 노자에게 놀림이나 당한 ‘묵가’사상이 이후에도 언급 될 것인가라는 점. 도태된 사상이라 불리고 너무 방어적이고, ‘모두 까기’라서 외면당한 사상이라지만 이 것에도 뜻이 있을 텐데 노장사상 입장에선 묵가도 한심해보였으니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이유는 알고 싶었는데 2권에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 다음 작품에서 그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내 욕심일 뿐이다.

그 다음 기대되는 것은 진시황의 일생과 너무나도 빠르게 망한 장초의 영웅, 오광과 진승의 이야기다. 이미 ‘춘추전국이야기’에서 알게 된 오광의 기세는 숭고했지만(수천년 후에도 언급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는 명대사 중의 명대사다) 그 역시 사람이었기에 허망하게 망하는 과정이 안타까웠는데 단지 사건의 서술처럼 나올지 나름 다른 연출로 오광이 몰락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항우의 몰락. 현대에 들어서 재평가 혹은 그에게도 본받을 점은 있다고 주목받지만 유방과의 대결에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인지, 또 그가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희재 화백만의 연출로 감동을 느끼고 싶다. 반대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는 이 후 한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이다.

이상하게도 예전부터 한나라의 이야기는 거부감이 들었다. 삼국지에선 ‘성스러운 상징, 지켜야 할 절대 선’으로 여겨지던 그런 존재지만 나 자신에게 ‘한나라’라는 존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동양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의아하게 들릴 수 있겠다.

나도 그 기분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힘들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그 무서운 훈족을 만들어낸(아직도 전세계 역사학자들의 논쟁거리지만...) 서쪽으로 도망가게 만든 흉노족을 토벌한 사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시작이었던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세운 악행(?) 때문인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치켜세우는 고대왕조’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생리적 거부감(?) 때문인지, 오랜 세월 조상님들이 선진국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추종했던 문화의 온상지라는 현대국가의 시민이 느끼는 저항감 때문인지 한나라에 대해선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모든 중국사에서 나는 그저 다른 동양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다. 거기에서 내 것으로 취할 수 있는 처세는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팬아트)


끝으로 부흥 카페에선 완결되는 그 순간까지 이화백의 사마천 사기 이벤트를 지속한다고 들었기에 그 이벤트에 계속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서평 이벤트에 참가하기로 마음먹는 취지에서 2권의 주요 인물들을 간략하게 그려보았다. 왼쪽부터 노자, 사마양저, 손무, 오자서, 공자다. 단 공자의 경우 나는 뻐드렁니를 추가했다. 나에겐 뻐드렁니 공자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다.

덧글

  • 안경고양이 2020/06/29 07:40 # 답글

    농번기인 봄과 추수철인 가을에도 쉬지않고 전쟁을 했다는 의미로 춘추라고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역사는 공부하면 할수록 어렵죠. 솔직히 오래 전에 저도 사기를 원서로 읽고 싶다고 해서 어느 지인분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걸 빌려준 적이 있는데... 역시나 머리와 눈이 팽팽돌아가서리... 하루만에 반납했다는 슬픈 전설이... 한문만 잘 안다고 되는 게 아니더 이 말이죠. 진짜 번역하시는 분들은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역시 제대로 보려면 읽기 힘든 거에 도전하는 게 좋은 듯 합니다.
  • K I T V S 2020/06/29 23:50 #

    입문용으로는 굉장히 좋은 만화책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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