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4 16:16

<서평> 내 아버지의 꿈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책 표지)



*이 책은 대한민국 2대 부총리이신 김학렬 부총리의 일대기를 그의 장남이신 김정수 기자가 엮은 회고록이다. 김 부총리 본인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저자의 말에 따르면, 철저히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설명한다. 일단 아드님이 저자이기에 객관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나름 객관적인 빛과 어둠이 가득한 일대기였다.

보통 산업화 시대하면 박정희 대통령이나 포스코의 박태준  사장만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외에도 숨겨진 역군이 있었으니 바로 김학렬 부총리겠다. 젊었을 적부터 ‘학(鶴)’자의 일본식 발음인 ‘쓰루’로 불리길 원하셨기에 이 책에서도 쓰루라는 이명이 본명보다 더 많이 언급됐다. 때문에 우스개소리로 이 책이 일본 사람의 일대기로 착각할 뻔 했다. 그러나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박태준 사장 외에도 김영삼, 김대중(당시엔 국회의원들) 등 모두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인물이 가진 단면이라 봐야겠다.

쓰루는 가진 게 ‘머리’밖에 없었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나오고 그 지식으로 자신의 직장에서 리더쉽을 발휘하고 나쁘게 말하면 부하들을 갈구고 자기 자신도 혹사시키며 성과를 내서 승진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긴 인물이었다. 쓰루의 일대기라고 항상 그를 좋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쓰루의 성격이 모질고 함부로 욕이나 훈계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세게 나오는 성격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었다고 기록됐으나 그렇게 그를 비판한 사람도 나중엔 그가 그립거나 결코 그를 미워하지 않고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명의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물론 나도 당사자라면 복잡한 시각을 가졌을 것이다.

한편으론 중세적 세계관을 가진 ‘조선 사람’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가는 과도기를 겪은 모든 사람의 공통적 특징이었다고 느꼈다. 자신과 배우자의 집안 차이와 자신이 싸워야 할 외국의 기관 정상들과 국내 기업가들, 국회의원들과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압박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과 다투어가면서 생활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기업가처럼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한 행적이 보여서 나도 과연 이 분처럼 열심히 살 수 있을까하는 경외감도 들었다.

알고 보니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그리고 통일벼와 1970년대 초의 중화학공업 양성계획에도 쓰루의 역할이 매우 컸다! 정리하자면 박통의 계획과 왕초(장기영 부총리)의 뚝심 그리고 쓰루의 추진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현대의 대한민국이 있기에 반드시 필요했던 공업정책의 상당수가 쓰루의 머리와 손이 아니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놀랍다.

한편으론, 쓰루가 이리저리 사람들과 충돌하면서도 오히려 박통의 신임을 얻고 박통을 미워했던 야당의 국회의원들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교두보 역할을 한 점도 존경스러웠다. 보통 박통을 독재자니 뭐니 하며 이런 저런 모함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김 부총리의 역할을 보며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군사정권 초기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쓰루 본인이 회의감을 가지고 실제로도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평가가 미국으로부터 나오는 점도 인상 깊었다. 그러나 후엔 박통의 세계관에 감화되고 스스로 한국 경제 개발에 나서는 모습에 감격했다.

재밌는 건 쓰루 본인은 정부가 이리저리 간섭하는 정책에서 철저하게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질서로 변화시키는 걸 바랬다는 것. 그러면서도 기업가를 믿지 못하는 심리에선 복잡한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또 초기와 중기까진 나름 이른바 여당을 공격하는 언론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웃게 만들고 박통의 대내외적 명분을 굳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시다...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아 해임건의 3인방에까지 오르는 굴욕도 당하셨다.

공교롭게도 그가 부총리 직을 사임하게 된 것이 그를 죽게 만든 췌장암 때문이었는데 그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때가 점점 몸이 아파지는 시기였다는 점. 죽어 가는데도 야당의 공세에 불려나와 해명하는 장면도 찡했고 그가 사망하자 박통이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점도 안타까웠다. 쓰루의 생일은 10월 26일인데, 놀랍게도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날과 같은 셈.

아무튼 1972년 3월 21일, 김학렬은 급작스런 불치병이었던 췌장암으로 쓰러졌다.
(그로부터 8개월 후 같은 날, 김두한 의원이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동아시아 정책을 수정하고 월남이 버림받자 박통이 절망에 빠져 중공업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던 차였다. 그의 정치적 지인이었던 박통과 김 추기경 등이 그를 애도했으며 그가 추진한 정책 일부는 그의 사망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쓰루의 시대는 근성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였으며, ‘근성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이신 김정수 기자님은 이제 한국은 BTS나 봉준호 감독 등이 이념에 상관없이 사랑받는 인재로 거듭나며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데, 제발 저자 말대로 한국에 좋은 일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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