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4 00:22

<서평>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책표지, 내용은 같지만 번역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2권의 책)

 



*알렉산드로스 대왕하면 천재적인 능력으로 온 세상을 정복할 뻔했으나 요절하는 바람에, 기껏 세워놓은 거대제국이 후계자 싸움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식으로 알려진 고대의 화석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 후 로마제국의 전성기까지 고대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스타답지 않게 자료가 부실했던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아리아노스라는 그리스인 출신의 로마 관료가 알렉산드로스의 최측근이라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이집트 왕국을 세운 디아도코이), 아리스토불루스(대왕 옆에서 선전물을 쓰던 작가), 칼리스테네스(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가장 객관적으로 대왕의 전투를 기록한 학자였으나 너무 올곧은 태도로 인해 죽음을 자처해서 중간에 기록이 끊김) 세 사람의 기록과 그 외의 고대 기록을 총집합하여 고대인의 관점에선 가장 객관적이고 자세히 대왕의 정복 여정을 간결하게 서술한 책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라 할 수 있다.

 

원래 아리아노스의 본명은 크세노폰인데 이는 아나바시스를 쓴 고대 그리스의 군인 크세노폰과 같은 이름이다. 때문에 그는 ‘1만인의 원정기(아나바시스의 원 제목)’를 쓴 크세노폰의 아성에 도전하고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않던 알렉산드로스를 기념하는 책이 없던 점을 꼬집어 아나바시스 알렉산드리(대왕 원정기의 원제)’를 지어냈다고 스스로 책에서 서술 목적을 밝힌다.

 

이후 역사학자들이 대왕과 주변인물 그리고 헬레니즘 세계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이유도 아리아노스의 기록덕분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로스를 다룬 책이 이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라는 로마의 원로원이 쓴 알렉산드로스 대왕 전기가 있고 그 유명한 플루타르코스가 쓴 대비열전(영웅전)’도 있다. 위의 책 중 루푸스의 대왕 전기는 윤진 교수가 번역한 아리아노스의 대왕 원정기와 함께 국내에 출간됐다. 이는 후반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원정기의 내용 자체는 알렉산드로스가 필리포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시작된다. 우선 발칸반도 북방의 야만족들을 평정하고 테베가 일으킨 반마케도니아 연합을 이룬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벌하는 과정이 초반부를 이룬다.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전투가 일어나지만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피해와 적군의 피해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에서 알렉산드로스와 휘하 장군들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교차검증과 현대 학자들의 현실적인 추측을 감안해도 경이로운 전력 차이가 느껴졌다. 아리아노스라는 사람은 철저하게 알렉산드로스의 편을 들어주며 그의 행동 대부분을 정당화하거나 부정적인 사건들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정벌 당시 테베를 멸망시키고 그 안의 모든 시민들을 노예로 전락시킨 점에선 비난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테베가 페르시아 편에 서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괴롭힌 업보라는 평가를 내린다. 책의 전개내용 자체가 알렉산드로스가 마치 온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크게 이야기를 나누자면 1권은 발칸반도 평정과 그리스 정벌 그리고 소아시아에서의 그라니코스 강 전투를 다루고 2권은 페르시아 총사령관인 로도스의 멤논 장군이 마케도니아를 견제하기 위해 바다에서 전략을 쓰는 장면(얼마 안 있어 병으로 요절하지만)과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3세가 처음으로 정면대결을 치룬 이수스 전투, 중동의 거대도시 티레를 정복하기 위한 공성전을 다룬다. 3권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사실상 끝장 낸 가우가멜라 전투와 바빌론 입성까지를 다루고 4권은 페르시아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추격전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유격전을 다루었다. 5권과 6권은 인도 북부를 침공하고 히다스페스 강에서 포루스 왕을 무찌르는 것과 이후 서북부 인도의 작은 왕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이후 병사들의 파업으로 대왕의 정복전쟁은 거기서 마무리 되고 6권 후반부까지엔 바빌론까지 귀환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마지막 7권에선 가장 친한 친구였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과 대왕 본인의 죽음을 다룬다.

 

검은 색 표지이자 해밀턴이 정리한 글항아리판과 노란색 표지의 윤진 교수가 옮긴 아카넷판은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일단 글항아리판은 좀 더 간결하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되어있고 지도와 삽화도 간간히 들어있어서 모르는 지명은 찾아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대신 물건이나 지명이 현대에 맞게 맞추어져 있거나(예를 들어 아카넷판에선 원전 그대로 대양으로 표기된 것을 글항아리판에선 인도양으로 쓰여 있었으며 아카넷판에선 희귀한 식물인 국화풀이라고 표기된 부분이 글항아리판에선 실피움이라는 원어명으로 그대로 나온다) 몇몇 인물들이 로마식 라틴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단적인 예가 파르메니온(아카넷판)=파르메니오(글항아리판), 네아르코스(아카넷판)=네아르쿠스(글항아리판) 등이 있다.

 

아카넷판의 경우 그리스어를 완역한 책이라 아테네도 아테나이로 표기되어있고 다리우스 3세도 다레이오스로 표기되어 있었다. 심지어 캅카스 산맥도 카우카소스 산이라는 고대의 지명으로 불린다. 때문에 고대의 책을 읽는 기분으로 원정기를 읽는 다면 아카넷판을 읽어야하지만 지도나 삽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자료를 가지고 함께 읽거나 글항아리판을 먼저 읽고 아카넷판을 읽어야 복습이 될 것 같다.

 

문체도 아카넷판이 좀더 고풍스럽고 젊잖아 보이는데 7권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병사들에게 실망한 대왕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이 어서 내 앞에서 사라지도록 하라!’라고 말하는 반면 글항아리판에선 당장 꺼져라!’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물론 후자가 더 격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극고증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울 수도 있다. 정확히는 두 책의 번역 분위기를 읽으면서 다른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무엇보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대왕의 행적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 없었는데 원정기 덕에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히다스페스 전투 이전에도 어마어마한 수의 전투가 벌어졌고 그 후에도 인도 북부에서 병사들이 치룬 고생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로스는 함께 고통을 나누었고 심지어는 혈혈단신으로 성벽에 오르다 그 자리에서 화살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원정을 포기하는 그 순간까지 총사령관이 전장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다. 심지어 병에 걸려 죽기 직전에도 그는 인도 원정을 포기하는 대신 아라비아 바다를 평정하고 서쪽으로 카르타고와 지중해 서부 그리고 흑해 연안을 정복할 계획을 꿈꾼 사실을 아리아노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가 만약 장수했다면 다시 한번 대군을 이끌고 인도를 다시 침공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티무르와 영락제의 대결과 함께 가장 유명한 역사적 떡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잦은 과음과 스트레스 그리고 친구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병과 운명의 장난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고 아리아노스의 책도 갑작스럽게 끝난다.

 

윤진 교수의 번역본에선 루푸스의 대왕 전기와 플루타르코스의 대비열전과 비교하는 짧은 글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세 사람의 대왕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였다. 우선 플루타르코스는 이도저도 아닌 담백한 시각으로 대왕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아리아노스는 최대한 알렉산드로스의 시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반면 루푸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비난하기 위해 책을 쓴 것과 같이 모든 사건마다 그를 비판하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고 해설한다.

 

이는 세 사람의 위치 차이기도 했는데, 셋 다 로마제국의 충신이었으나 세 사람이 걸어 온 인생이 달랐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멸망한 카이로네이아(마케도니아에게 그리스 연합군이 패배한 그 장소!)에서 태어난 로마제국의 작가였기에 대왕의 시각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바라보았다. 그리스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페르시아를 정벌하기 시작했다는 시각에 동조하면서도 끝까지 그리스인들을 믿지 않은 마케도니아의 젊은 국왕의 시각을 담백하게 소화했다. 루푸스는 로마의 본국 이탈리아 출신의 원로원이라고 알려졌는데 원로원은 제국 시대 내내 로마 황제들에 대한 애증의 시각이 강했다. 공화주의에서 점점 전제군주정으로 변해가는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고대의 사라진 젊은 국왕에 대한 비판이 섞인 전기를 쓰면서 공화정 로마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아리아노스는 이민족인 그리스인 출생이지만 총독 위치까지 올랐고 제국의 최전성기를 지냈던 인물이었기에 알렉산드로스의 짧지만 강렬했던 야망을 자신의 조국 로마제국의 팍스 로마나에 바치고자 썼던 것이 틀림없다고 평각했다. 이 세 사람의 시각 차이를 알면 더더욱 재미있는 대왕의 일대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후의 역사는 허망한 헬레니즘 제국의 붕괴로 이어지기에 철저히 알렉산드로스 본인의 처세술과 능력을 본받는 정도로만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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