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꿈은 물고기들의 기괴한 변신과 핵전쟁과 같은 재난 이후 일어난 소란으로 끝을 맺은 끔찍한 이야기다.
나는 2층 집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이 집은 늪지 위에 기둥위에 세워진 나무 판잣집이었으나 허름해보이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호화스러운 귀족 저택처럼 넓고 남부럽지 않은 편의시설도 가득했다. 심지어 거실엔 인공호수가 있고 1층과 지하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있던 특이한 집이었다.
늪지 위에 세워진 기둥이 떠받는 그 집 바깥으론 잠실 롯데월드가 멀리서 보였다. 대신 호숫가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국과 거리가 먼 장소 같았다. 오히려 호수는 바다와 같이 소금냄새가 났다. 나는 바다 같은 늪지-호수를 쳐다보다 내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에 앉아 개인 취미활동을 펼쳤다. 몇몇 손님들과 가족들은 거실에서 과자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가족들이 불러 나는 거실로 나갔고 내 방과 거실의 인공호수 말고도 곳곳에서 물웅덩이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던 방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검은색 그림자가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는 강아지만 했고 느릿느릿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무시했지만 뒤를 다시 돌아보니 그림자의 정체는 바닥을 기어 다니는 복어였다. 정확히는 ‘강아지만한 크기의 기어 다니는 가시복’이었다. 마치 망둥어처럼 기어 다니는 그것은 내 발목을 물어뜯으며 무엇인가 전달할 말이 있듯이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나는 놀라기보단 화를 내며 가시복을 때리며 쫒아냈다.
‘내 취미활동,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지 말라!’라는 의미로 복어를 쫒아낸 것 같았다. 가시복은 상심한 표정으로 강아지마냥 주변을 돌아다니며 투덜댔다. 짜증이 난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갔으나 넒은 내 방에선 책상 옆의 거대한 당구대에 물을 담가(어쩌면 당구대 모양의 욕조일지도 모르겠다) 낚시를 하던 아버지가 계셨고 창문에선 팅커벨과 같은 요정들이 또다른 물고기가 다가온다며 내게 손짓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요정들의 보고를 무시하듯이 내 자리에 앉았다. 결국 아버지가 소리치며 창문을 쳐다보는데 아까 가시복보다는 조금 더 작은 그림자가 창문을 타고 벽을 기어오며 내게 다가왔다. 그림자가 걷혀지자 아귀모양의 작은 물고기가 말을 하며 내게 깐죽댔다.
‘너는 무엇을 먹길래 내 삶을 방해하는 것이냐?’라고 내가 먼저 아귀에게 투덜댔다.
‘인육을 먹는다.’라고 덤덤히 방으로 들어온 물고기란 녀석이 대답을 한 것이다.
사람 고기를 먹는 물고기라는 사실에 놀라야 했는데, 나는 놀라지 않고 태연히 맞받아쳤다. 나답지 않았다. 사람고기를 먹으면 인간인 나와 내 가족이 불편해한다. 내가 너희들을 잡아먹으면 너희들도 기분 나쁘지 않을 거 아니냐고 말했다. 입장 바꿔놓고 말해보라며 아귀에게 덤덤히 조언해주자 아귀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작은 점토인형으로 변신했다. 인형모양의 요정으로 변한 물고기는 귀를 긁으며 ‘모르겠고, 곧 있으면 이상한 일이 터질 것 같으니 알아서 잘 피하시오’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멍하게 책상에 앉아 있었다.
심심해서 다시 바깥으로 나간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태양이 보이지 않는 흐린 날시였고 멀리서는 제2 롯데월드 타워가 보였다. 그러나 그 지역에 버섯구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는 버섯구름처럼 생긴 안개가 주변에 나타나고 불꽃이 껌뻑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한다고 느끼곤 가족들에게 당장 지하로 피하라고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무언가 챙겨야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두려움 때문에 급하게 몸만 빠져나왔다. 그때 생각났던 물건은 책가방과 휴대폰 충전기, 초콜릿이었으나 가져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는 방공호처럼 생긴 거대한 지하 대피시설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가족들과 몇몇 손님들은 다른 엘리베이터로 내려왔다. 벌써부터 지상에서는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방공호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이동장치가 있었다. 걷기만 해도 지하철 몇 정거장을 이동한 것과 같았다. 나는 일단 어머니와 함께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지상으로 나가자 버섯구름이 보였던 롯데월드 타워 근처까지 이동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꼼짝 못하고 있었고 버스처럼 생긴 작은 우주선 몇 대에 사람들이 타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누님들은 어서 빨리 특수한 마스크와 우비를 써서 핵폭발과 방사능 피폭을 막아야한다며 서두르고 있었다. 우선 먼저 어머니부터 완전무장을 시작했고 나는 뒤늦게 보금품을 사람들에게 받아 천천히 옷을 입고 있었다.
허나, 미처 무장을 마치기도 전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핵폭발이 일어났다! 현실세계라면 모두 가루도 남지 않아 죽어야했으나 나는 일단 어머니를 품에 안고 서로 고개를 숨겨줬다. 곧 엄청난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고 뜨거운 기운이 나를 덮쳤다. 다행이 가족들은 상처가 없었으나 나는 얼굴과 몸 절반이 화상을 입고 말았다. 주변 사람 중엔 돌처럼 변해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상처를 뒤로 한 채 나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정류장 근처의 매점처럼 생긴 작은 시설에 걸어갔다. 그 내부로 계단이 다시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피신해있었는데 가족들은 다시 지하 세계로 피신할 예정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이끌려 걸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몸은 영구적으로 망가졌으나 죽음은 피한 상태였다. 허나 이것이 핵전쟁인지, 누가 일으켰는지 이 장소가 대한민국은 맞는지도 알 수 없는 채 끊임없이 지하를 걷다가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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