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1 01:31

<서평> 대한민국 징비록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책 표지)



2019년 부흥카페 서평이벤트 중에선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과 함께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피력하며 현재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했고 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저도 사람인 이상, 저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그리고 이 사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내가 속한 국가의 번영과 행복을 꿈꿉니다. 모두가 그럴 것입니다. 각자의 가치관으로 과거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조선왕조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책들은 수두룩했습니다. 그 중엔 질 떨어지는 책도 많고 반대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 이 책은 ‘왕을 참하라’나 ‘못난 조선’같은 감정적 비난만 가득한 책들보단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와 비슷한 구체적 자료로 아쉬움을 표하는 책입니다. 제목과 주제만 보고 과격한 책이라 생각하지만 나름 조선의 장점을 말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완벽한 것은 없듯이 중세 가톨릭교회의 천동설 맹신을 거론할 때는 아쉬웠습니다만 이건 ‘폭군의 역사’라는 명저에서도 황제교황주의를 언급했었으니 넘어갔습니다. 어차피 서구 문명의 성장도 잔혹한 폭력에서 성장했다고 마냥 띄워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국제정세는 정말 잔혹하고 냉정하다는 것을 거듭 설파했고요.

그리고 박시백 화백처럼 조선 왕조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그 최전성기 세종대왕 마저 성리학 세계관에 갇힌 인간이었기에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을 거부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어수선한 사건이 많았다’를 증명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이건 승정원일기와 실록의 자료라서 부정할 수도 없고요. 기껏 세종대왕이 이룩한 조선의 강력한 시스템은 작동원리와 노하우를 다 까먹은 사림파 바보들에 의해 이상한 용도로 폐기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일본과 서구문명을 무작정 옹호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서로 최선을 하며 생존한 기록을 나열한 정도로만 보았습니다. 또 이미 역덕들에게도 알려진 ‘영조와 정조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것은 지양해야한다’라는 말을 확인하는 자료도 알게 됐죠. 일단 영조가 책을 사고파는 잡상인들을 학살한 사건과 개인적으로 존경한 실학자인 정약용, 박제가, 이덕무 등 지식인조차 정조 입장에선 광대에 불과했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증명하는 도구로만 쓰인 운명, 그것은 곧 이미 성리학만이 정답이라고 결론내린 정조의 태도 때문에 국가의 변신은 이룩하지 못한 사실을.


(착잡한 심정 표현 삽화.jpg)



이미 알고 있던 이삼평의 이야기도... 조용히 읽어나갔죠. 어렸을 적에야 ‘나쁜 왜놈들이 도공들 납치해서 그걸로 만든 도자기 팔아서 돈도 벌고 유럽인들에게 사랑받아 배 아프고 열불난다!’라는 감정적인 열등감을 가졌으나 이제는 체념했습니다. 신분이 낮은 도공들은 무덤조차 없던 조선 왕조의 시작과 끝을 보곤 이삼평의 후손들은 차라리 잘 됐다는 말을 제가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외에도 한글을 만든 건 좋았으나 금속활자의 보급도 ‘안 하고’, 지식을 철저히 지배층들만 독점해서 잡상인과 농부들조차 세계정세를 알 수 있었던 일본과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여 대한제국의 성장이 실패로 끝난 요인으로 작용했던 점에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가로 존경하는 위정척사파 선비들의 용맹과 기개는 존경해야 마땅하지만 끝까지 성리학적 세계관을 고집하며 개혁을 막아댄 사례도 있었기에 처음부터 대체역사는 삼가야했습니다. 일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도 많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방해하는 정치세력을 일거에 무찌를 수 있었던 건 모든 역덕들이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울증을 유발하는 후반부는 너무 읽기 싫었습니다. 자신을 ‘지구를 여행하는 외계인의 심정’으로 바꾼 후 읽어갔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시각으로 구한말을 바라보면 ‘조물주가 일부러 한반도에 불운을 계속 안겨서 되는 일이 없고 패배로 가는 길만 열어주었다. 온 우주가 한반도를 증오하듯이(마치 무굴황제에서 언급된 구절처럼)’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죠. 그게 아니면 일본과 서구문명에 대한 증오와 반대로 조선 왕조에 대한 증오만 남으니까요.
분명 성리학적 질서만 가득했던 선비들도 세계를 보는 시각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핑계대서 외면하거나 기득권을 내리기 싫어 모른 척하고 혹은 정치적으로 힘이 없었습니다. 가장 냉혹한 개화파 인사들조차 인간적인 실수를 저질러 자신들이 죽어서도 욕먹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결국 2019년까지 와서... 일본은 수백 년 동안 백신을 꾸준히 맞으며 넓은 세계를 학습했기에 노벨상도 많이 탔고 지금도 계속 탑니다. 반면 우리나란 20세기 후반에서야 겨우 경제적으로 풍요를 맛보아 노벨상 같은 걸 꿈꾸려면 한참 후가 지나겠죠. 제게 있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괴로운 마음을 없애기 위해선 ‘극일’을 더 열심히 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카페에서 왜 어째서 이 책을 소개할 때부터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소란 때도 그렇고 제가 봤을 때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부분도 ‘없던 이야기를 지어서 매도하는 식’이 아니었고 그냥 다른 시각으로 좋지 않게 보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내가 만약 이 자료를 그럭저럭 괜찮게 보면 어찌하나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잖아요.

요즘엔 ‘극일’조차 바보 취급받는 상황에 전 대체 무엇을 어찌해야 모르겠습니다. 진보는 극일 말고 비하형 혐일을 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화만 내고 있고 반대로 보수는 극일은 허상이며 차라리 반일을 하라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여론을 보면 ‘방숭이’등 인종적인 비하와 증오까지 일어나는 상황에서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하며 와신상담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환멸과 홍콩시위와 블리자드 사태에 대한 네티즌들의 절망과 공포를 보면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세계관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거 같다고 다짐했습니다. 좀 더 발언의 자유가 존중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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