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7 00:18

<서평>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개요편)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참고 글-





(책 표지)


“지구를 덮어버린 정치적 올바름의 위세”

*도널드 트럼프,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인 이 미국대통령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편이다. 무례한 말을 내뱉고 당연히 좋은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TV 속 정치인답지 않는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며 온 세상 모든 언론이 이 자는 악인이라고 정해놓았으니 그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왜 어째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럼에도 그를 선택해야 했나? 얼마나 주류언론이 싫었으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인가?’이 생각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 찾을 수 없었고 기껏해야 유튜브의 우파성향 논객들의 칼럼을 읽고 스스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홍지수 작가의 책을 읽고 나자 드디어 그 의문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풀 수 있었다. 직설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PC가 지구를 망친 것 맞네!’로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정도(Political Correctness), 최근 10~2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도 꾸준히 제도와 분위기, 국민 정서로 퍼져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규범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믿었지만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나도 한때는 정치적 올바름을 반드시 지켜야만 지구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지금은 배신감이 분에 넘쳐흐른다. 예를 들어 소방관을 뜻하는 영단어인 Fireman을 남녀 성차별을 막기 위해서 Firefighter라는 단어로 바꾼 식으로 우리가 발음하는 일상용어들을 다르게 바꾸는 작업부터 특별한 계급을 만들어 혜택을 준다는 식으로 사회제도를 고쳐나가는 모든 현상이 결국엔 오히려 현대 인류문명을 더 고통스럽고 갈등이 많은 사회로 만들고 있던 것.

우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만들었거나 현대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거론됐다는 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고 보급한 사람은 그 악명 높은 블라디미르 레닌이었다! 러시아식 스펠링으로는 Politicheskaya Pravil’nost라는 단어를 꺼내면서 ‘집권정당이 권력을 유지하고 목표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속적인 정책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일종의 정당 정신을 강하게 뿌리박게 하여 당 안에서 내분과 갑론을박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명목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고 그거에 걸맞는 사회개조를 진행 했다는 것을 아는가?

흔히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레닌과 트로츠키는 결코 악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의 행동은 필요악이었으며 인류사의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그들은 존중 받아야하고 그 안에서 파생된 피의 역사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없는 등 과도한 비호를 받는 분위기에 의아할 것이다. 특정 인종, 민족, 지주 혹은 자영농이냐, 귀족이냐 상공시민이냐 등등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타고난 출신 성분만으로 개인의 삶을 국가 혹은 당이 정하고 이 사람을 죽이냐 살리냐 등을 결정했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들 너의 출신 성분은 너를 굴라그로 가게 만들 것이다’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스탈린이 아니더라도 레닌과 트로츠키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둬 죽였다. 당연히 집권 정당의 신경에 거슬리는 농담을 했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만 20만 명이 넘었다. 이 모든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서 철저하게 진행됐다.

무서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공포적인 사회를 수용해야만 했다. 어이없게도 이와 똑같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인생이 끝나거나 특정 집단이 매도당하는 현상이 서구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강제수용소만 없을 뿐이지 이런저런 족쇄는 계속 생기고 있다.

소련이 해체됐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서구 사회는 온갖 자유를 빙자한 방종을 즐기다가 엄청난 역효과를 받고 있는데 이 사태를 예견한 무시무시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소련이 눈 시퍼렇게 살아있을 냉전시기에 온갖 공작을 서구사회에서 펼친 전직 KGB요원 ‘유리 베즈메노프(Yuri Bezmenov)’는 1984년, 미국의 TV방송에서 굉장히 소름끼치면서도 어려운 말을 꺼냈는데 다음과 같다.

“나는 주인도 소련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우선 소련 입장에서 적대적인 인도의 출판업계, 언론계, 연예계, 학계, 경제계, 정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자료를 모은다. 그 다음엔 이 사람들을 친소련과 반소련으로 나눈 후 소련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그 나라 사회로 하여금 인격살인을 하도록 유도해서 사회에서 매장한다. 이렇게 되면 소련에 호의적인 인사들만 남아서 사회 분위기 자체를 우리와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게 된다.

허나, 그렇게 소련을 위해 충성을 바쳤건만 공산당은 후에 소련에 호의적인 인사들을 철저한 숙청의 대상으로 보고 토사구팽할 것이라는 상황에 내 삶에 환멸을 느껴 서방에 망명했다. 그러나 서구 어느 나라도 진실을 얘기해도 믿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공포감도 느꼈는데 오히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서방의 지식인을 빙자한 좌익들에게 인격살인을 당하기에 절망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메즈메노프는 공산당 입장에선 인권운동가들과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등을 체제를 전복하는 과정에서만 필요할 뿐 그 후엔 철저히 말살대상에 포함되며 현실을 깨달으면 자신들의 적이 될 것이므로 체제를 전복할 때에만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이 결코 깨어나지 못하게 각성에 방해를 하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이간질하고 혼돈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목적이 이루어지면 바로 죽일 수 있도록 짓이겨 놓는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이념전은 크게 3가지다.

1. 이념적 전복
2. 적극적인 조치
3. 그로 인해 일어난 인식혼란

여기서 인식혼란(Demoralization)은 15~20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 불행이도 소련은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이젠 소련이 망했으니 러시아인들의 자뻑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이후가 문제다. 60년대에 어설픈 지식과 관념을 가진 지식인들이 현재 미국의 정부, 기업, 언론, 매체, 교육계를 모두 장악했고 이로 인해 수천만, 수억, 수십억의 사람들이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게 가장 큰 무서운 점이다.

인식혼란을 일어난 모든 세대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이미지로 먼저 해당 존재를 알게 되고 이후에 어떠한 진실이나 자료를 받아들여도 그 인식과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련의 공작이 대성공했기보단 미국 스스로 자멸했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의 공작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엔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었다. 흔히 멋스러운 단어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어쩌면 정치적 올바름이 전 세계에 뿌리 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든 사람들은 현대 철학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신좌익(New Left)’의 창시자였다.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에서만 머물고 전 세계로 퍼지지 못한 점에 안타까워 하고 왜 레닌식 사회주의가 실패했는지 연구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와 헝가리의 기외르기 루카치(Gyorgy Lukacs)가 말하길 ‘서구의 노동자들은 서구문명의 상위 계급들의 체제 속에서 진실을 모르며 살기 때문에 서구문명 자체를 파괴해야지 노동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서구사회의 언론, 영화계, 교육기관, 정치계에 인물들을 심어 문화 자체를 변형시켜서 새로운 공산주의자들을 만들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선 왜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이름이 생겼냐하면, 재밌는 게 이 연구소의 이름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연구소였다가 사회조사연구소로 이름을 개명했고 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와 제휴를 맺어서 프랑크푸르트 학교로 이름을 다시 바꿨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는 1924년에 개교했으나 이미 1년 전부터 루카치가 1주일에 한번 씩 세미나에 참가하고 그가 다루는 문화관련 연구 자료들이 세미나의 중심소재였다. 

프랑크푸르트 학교의 초대 총장은 무시무시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카를 그륀버그(Carl Grunberg)였고 그의 후임인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서구사회를 전복시키기 위한 ‘문화적 상부구조’를 강조하며 여러 세대를 거쳐서 사회 요직에 우리 사상을 공유하는 자들을 집어넣고 온 세상을 평등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면서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어낸다.

후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와 에리히 프롬(Erich Fromm)도 가세하여 ‘젠더 정치학’과 ‘성적 해방’을 거론하고 이는 생물학적인 차이는 결코 문제가 아니며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만 다를 뿐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여기서부터 무서운 PC의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한다.

나중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도 동참하여 ‘비판 이론(The Critical Theory)’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서구문명의 근본을 이루는 모든 것들... 즉 그리스도교, 가족제도, 가부장제, 시장경제, 권위, 도덕, 애국심, 관습 등을 무자비하게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존재 자치를 땅 밑으로 끌어내려 평소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 혹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성애자, 유색인종, 여성, 지역문화, 문화상대주의, 환경주의 등 모든 ‘정체성 학문(Identity Studies)’의 아버지뻘 된다. 이는 결국 정체성 정치로 이어졌고 대학교에서 여러 학과들이 개설되어 정치적 올바름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거대한 진지로 만들었다.

비판 이론은 사회를 개조가 아닌 파괴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런고로 다문화주의는 필수로 실행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바람직한 미래와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는데에만 집중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비판 이론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 모든 것은 1960년대에 급속하게 진행됐는데 1933년 나치당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행보가 재앙의 전초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쿠제가 말한 ‘억압적 관용’이라는 만능 무기로 무의식적인 억압을 받고 있는 대중이 깨어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것을 주장하고 세상을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들로 양분한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진리가 없다고 놓으면서 그 누구도 뭉치지 못하게 한다. 소련 붕괴이후 공산주의 대신 이름만 바꾼 또 다른 형태의 사회주의일 뿐이다. 비판의 대상은 오직 서구사회일 뿐이고 서구사회와 적대적인 이슬람, 구 공산권 그리고 중국이나 제3세계의 권위주의는 문화상대주의 관점으로 봐야한다며 비호해준다.

무엇보다 억압자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피억압자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올바름을 벗어난 증오발언이므로 들을 가치도 없다!’하며 매도하기 바쁘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비판자가 자아비판을 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인격살인을 당하기에. 여성에게 무조건 잘해줘야만 하는 여성주의, 서구문명은 죄악의 문명이므로 발전하지 말아야하는 환경주의, 무조건적인 다인종간의 혼합이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다문화주의 등 모든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뿌리다.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상태로 사회를 자신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폐해는 가치체계의 파괴인데 ‘가치’가 파괴된다는 것은 삶에서 추구해야할 방향과 목표를 없애면서 아무것도 다른 것에 우선하지 않으므로 무의미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인내를 하면서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만 하는게 모든 인류 역사의 본질인데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목표 지향적인 가치구조 안에서 노력을 하면서 자신의 일부를 억누르면서 다른 사람들 일부를 배제하게 되는데 이것을 악이라고 선언하면서 노력해야 할 목표 자체를 없애게 되니 모든 것이 밋밋하고 무감각해지고 오로지 고통만 남는 사회로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서운 점은 허무주의를 발현시켜 가치체계를 경직시킨 사회로 급속하게 변하게 만드는 위험성도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구문명을 제외한 문명권을 과도하게 비호하는 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것도 ‘서구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스며든 문명은 타락하였기에 구제가 불가능한 머저리’로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노려보고 있는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 문제를 볼 경우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1천년 넘게 수백만의 흑인노예들을 거세시키고 죽도록 굴리기만 하고 후손도 만들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킨 중동권의 노예무역을 비판하는 자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인종차별에는 동유럽과 남유럽의 백인 이민자들도 있으며 이들의 사회차별에 대한 극복노력이 상대적으로 비하당한 것도 흑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비판 문화의 폐해였다. 애초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보완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분위기가 2017년까지 미국에서 만연했다가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엄청난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반전이 잠깐으로 그칠지 작은 혁명이 계속 퍼져갈지는 상황을 지켜봐야한다. 이 책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사실이고 이것이 거짓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런고로 최대한 많은 팩트를 나열해서 자료를 정리해야하나 그러기엔 너무나도 시간이 부족하기에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우선 크게 PC가 어떻게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는지에 대한 자료가 초반부고 중반부는 병들어가는 미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사례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누구보다도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힘겹게 만든 오바마의 실책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언급 없이 오직 트럼프만 증오하는 미국 주류언론들의 실체와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부패를 일삼는 힐러리 가문 그리고 철저하게 우파 아니 반좌파 성향의 대학생들과 인재들을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에서 어떻게 탄압하는지에 대한 사례들이 나온다. 이것이 헛소리라면 이 모든 자료들이 거짓말이어야 한다. 사례를 일일이 나열해서 언급하려 했으나 하필이면 오늘이 책반납 만기일이라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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