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1 03:31

<서평> 정조와 채제공 그리고 정약용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표지)


*유럽과 중동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인간의 문화사나 현대 정치사는 읽기 쉬운데 굉장히 어려운 종류가 있으니 바로 조선사다. 하나의 현상과 그로 인한 이유 그것의 계보를 알 수 있는 다른 분야와 달리 조선 후기의 역사는 말 그대로 궁중에서 일어나는 암투와 붕당들의 성격 그리고 그 차이가 세세하고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어렵다. 무엇보다 어려움에 비해 그 공부를 한 보람이 잘 나지 않는다.

조선의 중흥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읽은 것은 오랜만인데 무려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정조 임금과 다산 정약용 그리고 채제공이라는 현명한 남인 출신 정치인의 이야기다. 나는 채제공이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호칭인 줄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인물인데 세 사람의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다룬다. 영조, 혜경궁 홍씨, 조선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정조의 초창기 오른팔 홍국영 등이 또다른 주인공들이다.

이 세 사람의 비중이 커지는 건 이 책의 중반부터고 정조 임금의 업적(?)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건 후반부부터다. 그 이전엔 오히려 영조 임금과 조선의 당쟁역사가 지루하게 펼쳐진다. 음모론자로 유명한 이덕일과 달리 박영규는 그보단 낫다는 평가를 받지만(책 안에서도 영조 사생아설이나 정조 독살설을 비판한다) 역시 안 좋은 평가를 받기에 우려스러웠으나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개인적인 느낌을 다룬 삽화.jpg)


이 책은 정조와 정약용보단 채제공과 남인 그리고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의 비중이 더 크다. 영조의 탕평책을 비롯한 조선 후기의 당쟁의 흐름을 서술하면서 벌어진 사람들의 이권다툼이 벌어지는데 성리학은 아무리 봐도 너무 어렵다. 짧게 말하자면 노론과 남인의 대결이라 볼 수 있다. 채제공과 정약용은 남인 출신인데 남인들 중엔 성리학자 답지 않게 개방적이고 과학적인 선비들이 많다는 선입견이 있다. 따지고 보면 조선의 모든 붕당들은 유학의 세계질서를 따르는 고리타분한 옛 세대인데 노론은 악, 남인은 선이라는 단순한 사고 속에서 책을 보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고뇌했다. 천주교 비율이 높았던 것도 남인이었으나 그 남인에서도 천주교를 비판하는(그 중에는 독도의 수호자 안정복도 있다) 선비들도 있었으니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서로를 견제하는 이들 중엔 정조의 즉위에 큰 도움을 준 ‘동덕회 4인방’, 홍국영-김종수-서명선-정민시 모두 당파가 달라 결국엔 서로 싸우기에 바빠 정책을 이끌어나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포착했다. 전근대 국가라고 애써 외면하거나 이해해달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노론과 적대적인 소론조차 남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남인 중에서도 천주교나 서양 학문을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조선 사회의 기본적인 한계도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는 정조의 업적 나열을 억지로 끼워놓는 식의 서술이고 채제공과 정조의 죽음으로 인해 순식간에 몰락하는 남인 인재들의 운명을 보면 안타까운 기분도 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선에 더욱 비판적인 시각이 강해진 나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났다. 그래도 이 책은 요즘 들어 관심이 더 생긴 조선 후기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책이고 붕당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던 책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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