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표지)
부산물은 말 그대로 의도하지 않게 나타난 찌꺼기 같은 개념이다. 현재 우리가 과거에 비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이유도 ‘문명’의 덕택인데 이게 ‘부산물’이라니! 참으로 발칙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인 정예푸 교수는 중국의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인데 머리말에선 ‘중국이 여전히 비뚤어진 애국심과 잘난 척을 많이 하는 나라이지만 이것을 버릴 때가 됐다’라는 말로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 책을 설명하는데 과거의 유명했던 외국의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과 저서를 비교해가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이다. 언급된 학자 중에는 그 유명한 ‘총, 균, 쇠’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있었다.
크게 ‘인류가 어찌 퇴화하지 않고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냐’로 시작하면서 ‘일부일처제’와 ‘농업’, ‘문자’, ‘종이의 발명’, ‘활자 인쇄와 출판의 보급’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명 게임 시리즈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역사를 차용한 문화상품 덕에 문명이 어떠한 목적을 띄고 계단을 오르듯 발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하며 우연을 통해서, 운이 좋게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인류가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연스럽게 흐르다보니 오늘 날에 이른 것이라 말한다.
“왜 결혼할 때 아내와 남편을 한명씩만 둘까? 태고엔 아내나 남편이 여러 명 아니었어?” 혹은 “근친상간은 유전적 위험을 깨달아서 금기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살다보니 금기가 된 것일까?”라는 것에 대해선 인구가 조금씩 늘어날수록 “아내와 남편을 한명씩 두고 가정을 이루는 것과 직계 자손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공동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이게 누적 되서 이어진 것이다”라고 설명된다. 만약 아빠와 엄마에서 태어난 아들이 엄마하고 결혼해서 후손을 낳으면? 그 후손은 아들과 아빠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러한 가정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살기 어려웠던 원시인 사회에서 이는 공동체 붕괴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유전적 결함으로 공포감을 얻어서 금기하기 보단 예측을 통해 예방하는 차원으로 근친상간을 금기하고 일부일처제를 통해 돈독한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가 부서지지 않도록 문화적, 종교적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다.
농업에서도 위와 같은 서술이 이어지는데 ‘운 좋게’ 야색 벼와 조, 밀이 자라는 지역을 원시 인류가 지나가다 그것을 수확하고 먹으면서 ‘수확전용 농업’이 이뤄지다 인구가 불어나자 종자만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직접 재배를 시도하면서 농업이 시작됐다고 말이다. 저자는 수렵시대의 인류가 오히려 전근대 대부분의 농민들보다 노동을 적게 하고 건강하게 살았다고 주장한다. 시간을 계산하면 하루에 2시간 정도 사냥을 하면 충분히 먹을 고기를 구했다고 말이다.
다만 문자부분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장 자크 루소를 비롯한 옛 학자들의 문자에 대한 정의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저자가 중국인이다 보니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여도 은근슬쩍 중국을 빛내려는 뉘앙스가 조금 보였다. 예를 들어 ‘흉노를 비롯한 유목민들은 그들이 무능해서 문자가 없는 게 아니라 문자를 가진 중화 한족들과 섞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문자를 쓰지 않은 것이다.’라면서 유목민의 다른 점을 인정해주지만 ‘중국에서 조와 벼를 가장 빨리 생산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중국의 유적 발굴 상황으로 볼 때, 먼저 농업이 진행되고 이 농업 사회에서 벗어난 자들이 북쪽으로 올라가 역사 속의 유목민들이 된 걸로 추정 된다’라고 말하는 점에선 약간 중국이 좀 더 낫다는 냄새가 났다!
뭐, 중국인 학자가 쓴 책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인터넷 전반에선 한자를 매우 싫어하는 여론을 봐서인지 한자 설명 부분에선 중국 한자의 아시아 역사 속 영향력을 운운할 때 피식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우려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 맞는 말이라고 믿게 될 테니까.
그래도 중국의 역사 속 인물들의 기록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던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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