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3 22:33

[영화감상] 남한산성을 관람하고... 비밀의 정원 (소감문)

(스포일러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역사 영화라 다 아시겠지만...)



(출처 : 네이버 영화, 기타 이하 동문)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다 아는 내용이고 알아봤자 기분만 나쁜, 조선이 처참하게 패망하는 것일테니. 그걸 좋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처음에 저는 처절함 속에서 폐허 속에서 인조와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눈물 흘리며 무릎 꿇는 절망물의 극치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신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 할 수는 없었고! 몇몇 이웃분들이 업로드한 사진 속에 조선군의 복장 고증과 무기 사용이 역대 최고급으로 이루어진 점. 배경음악을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전장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 등으로 유명한...)'가 맡았다는 점이 저를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다 본 저의 관점은 딱 이거 였습니다. '한국의 덩케르크'. 정확히는 덩케르크와 몰락(다운폴)을 합친 느낌이었습니다. 그 어떤 감정적인 연출을 자제하고 조선군의 저항과 인조의 내적 갈등, 어떻게든 나름 나라를 살리려고 노력한 두 신하의 입씨름과 청나라의 절망적인 힘 등 정말 당시 역사적 장소로 되돌아 온 기분은 덩케르크의 그것을 느꼈으며 내부에서 파멸해가는 절망감은 몰락의 그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나마 몰락의 경우 인류사에 대죄를 저지른 나치 독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덤덤하게 지켜봤을 뿐(게다가 나중엔 특정 장면이 웃긴 인터넷 밈이 됐죠) 남한산성의 경우 조선의 앞날을 결정지은 안타까운 역사적 순간이라 조금 침울하게 볼 수 밖에요.



사실 병자호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점이 많죠. 당시 그 강하다는 청나라 군대도 명나라가 이자성의 난으로 자멸하기 전까진 단 한번도 명나라 수도로 향하는 관문인 산해관을 뚫지 못한 점. 병자호란 당시에도 여전히 명나라는 다시 국력을 회복시킬 가능성도 있었던 점에서 청나라와 화친해야한다는 주장만이 진리는 아니었단 사실이 있다는 점에서 맞서 싸워야한다는 주전론이 악당취급받을 순 없었다는 시대적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고 있었죠. 또 임진왜란에서 얻은 피해를 최대한 빨리 회복하고 대대적으로 여진족은 조선에게 두들겨 맞은 대상이었던 점에서 대여진 기병대들이 살아있었으면 그 청나라조차 과거 귀주대첩처럼 통쾌하게 박살낼 수 있거나 조금만 더 식량과 병사가 많았다면 만주쪽에 대기근이 들어서 청나라가 자멸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도 나타났습니다. 물론 어쨌든 이괄의 난과 같은 반란과 인조의 삽질로 인해 인류 역사는 오늘날 지금 이렇게 흘러버렸죠...

아무튼, 외적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이 영화에선 화친론을 주장하는 이병헌의 연기도 나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정말 단순히 명분을 넘어서 국익에 피해가 가는 정도의 무시무시한 치욕을 감수하자는 것이었고 주전론을 주장하는 김윤석의 연기도 단순한 수구세력의 울부짖음이 아닌 말이 맞는 말로 들어져서 감히 누가 맞다고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인조의 연기도 수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졌던 찌질하고 이상한 모습과 달리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러나 '암울하고 무서운 생존 호러의 플레이어'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역사가 말해주듯이 아주 잠깐 조선군이 잠시 청나라 병사들을 상대해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조선군은 패배만 하고 처참하게 능욕당하다 끝날 뿐이었습니다. 조선군에 대한 고증이 최고라는 영화에서 정작 취급이 이러나 슬펐습니다만 뭐 할 수 없죠;; 반면 청나라 병사들은 무력과 병사 숫자 뿐 아니라 홍이포라는 최첨단 병기까지 끌고왔습니다. 가히 덩케르크의 독일군의 총격과 폭격을 능가하는 아니 영국 드라마 '닥터 후'의 달렉들과 같은 절망적인 자연재해 그 자체로 느낍니다. 청나라 인물들은 악역이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고 끝까지 주인공들을 비웃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악신처럼도 느껴졌습니다. (하필 통역관 배우분이 '내부자들'의 그 무서운 '조상무'역할 하신 분이라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 또다른 영화의 진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대장장이 청년(고수)이 왕의 전보를 들고 남한산성 바깥의 근왕군에게 달려갔지만 근왕군을 비롯한 지원을 도와주러 온 조선군도 영화 상 모두 처참하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남한산성이 폐허가 된 모습은 거의 폭격기의 폭탄에 의해 부숴진 분위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저항이 끝장나는 영화 '워털루'의 프랑스군이 전멸하거나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에서 이집트 전차대들이 몰살당하는 거만큼이나 허망한 기분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이 후 슬퍼하는 백성들 속에서 살아남은 대장장이는 꼬마 여자애한테 '백성들이 우는 이유는 임금이 도성으로 돌아가니 기뻐서 그런거다'라는 거짓말을 하는데..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고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인 '살아남자'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백성들 입장에선 명나라건 청나라건 조선이건 지배자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보여졌거든요.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장면과 엔딩 스크롤에서 들리는 음악은 확실히 여운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역시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영화 감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으로 접어두고 담백하고 팩트만을 보여주는 이런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영화관 밖을 나오는데 자꾸 현재 '사드' 문제라던가 한중관계를 자꾸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 미국을 명나라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는 점에서 의아했습니다...ㅠㅠ 그땐 그거고 지금은 지금인데.. 참...)

덧글

  • 피그말리온 2017/10/03 22:37 # 답글

    미국은 지는 해, 중국은 뜨는 해라는 주장이 한 때 횡행했고, 거기에 맞출 사례를 찾아보니 명나라와 청나라가 있었던 것이죠.
  • K I T V S 2017/10/03 22:45 #

    근데 진짜 나갈때 중국=청나라, 미국=명나라로 이해하고 사드 배치를 청나라에게 밉보인 조선의 멍청한 행위로 이해하는 청년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ㄷㄷㄷ 뒤에서 그거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 G-32호 2017/10/03 23:07 # 답글

    국뽕물이 되는가 싶었는데 덩케르크에 몰락이라니 뭔가 제대로 만든건가 싶기도 하고...
  • K I T V S 2017/10/03 23:08 #

    이 작품엔 신파적인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 역사관심 2017/10/04 03:36 # 답글

    쓰신 리뷰와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炎帝 2017/10/04 11:04 # 답글

    드라마적 요소를 위해 삼두고배에서 피터지는 장면이라도 나올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비통한 분위기는 죽지 않은건 대단하더군요.

    굳이 영화 보면서 좀 아쉬웠던건 잘 싸워도 질게 뻔한 전력차로 묘사되는 와중에 굳이 김류를 그런 세살먹은 꼬맹이도 알법한 실책을 남발하는 똥멍청이 내지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꼰대로 만들었나 했나 싶었습니다. 김자점도 첨부터 안나가려 한게 아니라 먼저 나서다 죽을까봐 보신하려는걸로 묘사하면서...

    특히 바람땜에 지금 싸우면 불리하다는 지적에 무당이 말한 길일이 오늘이라 할땐 송나라의 육갑신병 전설이 떠올라 뿜었습니다. 마침 상대도 같은 여진족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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