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6 04:34

<서평> 폭군 이야기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설명: 아킬레우스, 토머스 아퀴나스, 로베스피에르를 표현한 ‘3개의 폭정’)



‘폭군’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를까?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부하들을 때리고 흥청망청 파티를 일삼고 마음대로 신하들을 학살하는 무서운 군주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제목만 보면 역사 속의 폭군들은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상투적인 작품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펼쳐보니 예상이 틀렸는데 이 책의 제목은 ‘폭군 이야기’보단 ‘폭정 시스템의 역사와 그 미래’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즉, 단순히 폭정을 저지르는 국가 지도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헨리 8세, 아우구스투스 같은 군주들도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자기 마음대로 독재를 펼치는 무서운 폭군으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도 폭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하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인 권력자’라는 풀이다. 로마의 칼리굴라나 콤모두스 같은 폭군들은 [전형적인 폭군]이라 불리며 첫 번째 유형으로 나뉜다. 당대 사람들에게도 평가가 나쁘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만 한 파괴자. 두 번째 유형이 헨리 8세와 아우구스투스, 르네상스 이후의 절대왕정 국왕들인데 이들은 [개혁형 폭군]으로 불린다. 평상시엔 호화스러운 왕궁 생활과 파티, 사냥터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전쟁터에선 군사들을 지휘하며 단호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들을 처형하고 백성을 적절히 착취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부국강병을 일으켜 미래 세대들에게 귀감이 된 존재들이다.

이 책의 1번째와 2번째 파트까진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여러 곳에서 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프랑스와 러시아의 군주들의 일대기를 알려준다. 초라하지만 검소한 그리스의 족장(왕이라고 불렸지만)들의 생활과 이에 대응되는 동방의 엄청난 권력을 가진 거대한 왕궁을 비교하는 것부터 호메로스 서사시의 군주들과 중세 게르만 왕국들의 국왕들의 정서적 공통점이라던가 지중해식 정치 미덕과 로마식 정치 미덕 그리고 중세 그리스도교의 정치 미덕의 차이점이 재미가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바로 이젠 폐기된 학설 취급받는 ‘황제교황주의’를 이 책에서 적극적으로 인용한다는 점이다. 교과서에서 나온 낡은 표현으로 동로마제국을 중세 서유럽 국가들과의 차이를 설명하며 이 후 이슬람의 군주들과 근세 영국과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와 부르봉 왕조 프랑스들마저 황제교황주의의 속성을 이어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 전체가 틀린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러한 점을 거를 수 있으면 이 후도 재밌다.

사실 3번째 파트부터가 이 책의 본 게임, 메인 에피소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전형적인 폭군과 개혁형 폭군 말고 근대 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폭군의 유형은 [영원불멸형 폭군]이라 할 수 있다. 개혁형 폭군은 현실의 사회를 부강하게 만들거나 군주 개인의 야망을 위해 성장하는 케이스라면 영원불멸을 바라는 폭군들은 있지도 않았던 공허한 과거의 이상사회를 설계하고 이 사회와 닮기 위해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적들’을 죽여 없애 파괴하여 자신의 체제를 영원히 유지하려는 가장 무섭고 소름끼치는 성향인 것이다.

영원불멸 타입의 최초 사례를 이 책에선 ‘로베스피에르’로 잡는다. 보통 공포정치로 악명을 떨쳤다 혹은 로베스피에르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등으로 알려졌을 뿐이지만 여기선 근대와 현대 사회의 사악한 독재자들의 정신적 원류를 로베스피에르 정확히는 로베스피에르의 사상적 스승인 ‘장 자크 루소’를 꼽는 점이 신기했다. 보통 루소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대한 철학자라고 숭상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모든 것의 원흉급으로 까이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평가도 그리 좋지 못하는데 사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안 좋은 관점은 이미 일본의 만화 ‘진정남 나폴레옹(원제: 나폴레옹, 사자의 시대)’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영국은 귀족과 시민, 국왕의 갈등 끝에 명예혁명으로 타협을 이루며 피를 덜 흘리며 자유민주주의로 이동했고 미국 역시 폭력적인 독립전쟁으로 태어났으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인 반면 프랑스 그 이후의 독일과 러시아, 중국, 중동 여러 국가들의 혁명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파괴와 광기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사실 실제 기록된 혁명 당시의 끔찍한 참상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매일매일 살해당해 어느 한 광산에 매장된 귀족들이 수만 명이 된다거나 시체 앞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나 처형당한 귀족이라 알려진 사람들의 상당수는 힘없는 농부였을 뿐이라던가.

레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사실 이젠 재평가를 통해 더욱 나쁜 사람으로 전락했지만 한 때 이런 말이 떠돌았지 않았나? “공산주의를 망친 것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이다. 레닌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이런 걸 꿈꾸지 않았다!” 등.. 그러나 예전에 읽은 소설인 ‘거인들의 몰락’이나 에세이북 ‘젊은 스탈린’에서도 묘사된바 같이 레닌부터 먼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사악하고 화만 내는 쓰레기와 같은 지식인으로 표현됐다. 아니 아예 이 책에선 루소와 로베스피에르의 후예들은 대부분 할 짓 없는 지식인들이 카페에서 투덜대다가 힘을 모아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비하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 책에선 루소에 이어 포이어바흐, 니체까지 부정적으로 본다. 반대로 안타깝게 여기는 인물은 에드먼드 버크와 헤겔 정도. 이상향을 향한 지식인의 매료에 빠진 욕망에 빠진 대중들의 힘으로 광기는 계속 반복됐고 군중을 적절히 요리하며 조종하는 최초의 사례를 ‘나폴레옹 3세’로 여긴다. 유대인 음모론으로 유명한 책인 ‘시온 의정서’를 반박하는 자료에서도 나폴레옹 3세가 언급되는데 ‘모리스 졸리’가 쓴 풍자극을 제정 러시아의 비밀경찰들이 표절해서 만든 것이 시온 의정서라는 것. 그 만큼 이미 그 당시 나폴레옹 3세급 되는 황제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영원불멸형 광기가 실현될 수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이 후는 익숙한 이름들이 나온다. 스탈린의 대숙청과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그리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폴 포트의 킬링필드 그리고 이란의 호메이니에 의한 신정 정치 그리고 다에쉬 IS를 따르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절망적인 힘까지.

2차 대전 이후 공산주의와 파시즘마저 기득권으로 여긴 지식인들의 정신적인 불만은 제3세계로 이동하여 새로운 영원불멸의 광기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진 않았겠지만 북한 김씨 3대들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보통 이 책을 평 했던 다른 분들은 (황제교황주의를 차용한 점을 빼더라도) 서구우월주의를 설파하는 그리 좋지 못한 책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 관점은 다르다. 오히려 정의롭다고 여기거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났던 사건조차 실은 온건한 개혁을 밀어난 극단주의 세력들이 상황을 더욱 절망으로 몰았다는 것을 알았다. 중동에서 일어난, 아니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절망은 현재진행형이고 실체가 분명함에도 이스라엘의 만행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평가하는 것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그리고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도 언급되는데 그 분의 사상 자체를 저자는 존중하고 따르지만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던 그녀와 달리 저자인 월러 뉴웰은 악의 평범성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층부가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끊임없이 정신교육을 벌인 결과라고 주장하며 이는 루소-로베스피에르 때부터 이어진 이상향을 향한 영원불멸의 사상을 원하는 대중들의 광기 덕이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연 미래에 자유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인지 살아남아 영원불멸을 향한 광기의 정치를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끝낸다. 역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옛날이야기 같았던 1,2부에 비해 3부가 더욱 재밌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에쉬 IS말고도 중국과 러시아의 암울한 개혁형 폭군같은 권위주의 사회. 그리고 대한민국도 여전히 권위가 많은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같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할 시간인가.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서평 이벤트로 읽은 책 중 가장 재밌고 실감났던 서적이었다.

덧글

  • 검은불길 2017/04/16 13:51 # 답글

    제 생각에 영원 불멸형의 원조라고 생각되는 크롬웰에 대한 내용은 책에 없나요?
  • K I T V S 2017/04/16 14:13 #

    크롬웰도 등장합니다 토머스 크롬웰과 올리버 크롬웰. 우리가 아는 존재는 올리버겠죠. 허나 루소와 로베스피에르를 더 위험한 인물로 여겨요
  • 검은불길 2017/04/16 14:43 #

    글쎄요. 별 차이 없다고 보는데....
  • 흑범 2017/04/22 19:40 # 답글

    영원불멸형에 나는 마르틴 루터나 장 칼빈도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있던가요?
  • K I T V S 2017/04/26 19:50 #

    루터는 개혁형으로 그럭저럭 나왔고 칼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영원불멸형 폭군에 비해 그들은 눈엣가시 도 안되는 놈들로 표현됩니다.
  • 흑범 2017/04/28 20:19 #

    눈엣가시 도 안되는 놈들??? 글쎄요.

    스케일이 다르다 뿐이지,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습니다. 그것도 도덕과 정의라는 훌륭한 쌍권총으로 무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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