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4 17:38

파라다이스 中 '안개 속의 살인'은...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베르나르 베르베르 - 파라다이스 (그 중에서도)


내 소유였던 '파라다이스'를 마지막으로 읽은 챕터는 '안개 속의 살인'이라는 에피소드였다.

제목만 들으면 마치 안개 속에서 쫒아오는 살인마를 피해다니는 스릴러같은데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잘 나가는 신문사 기자가 주인공이며 배경은 프랑스의 지방도시였다. 평소대로 끔찍한 사건이나 특이한 사람, 이야기를 제보하던 기자에게 사건 하나가 찾아오는 데 도심의 흐르는 개울가에서 어린아이 한명이 온몸이 묶인 채 시체로 발견되는 무서운 사건이었다!

아무리 봐도 담당 형사는 이것이 살인일 확률이 높다고 기자에게 전해준다. 게다가 기자에겐 여러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내용은 죄다 '애엄마가 범인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부분까지만 읽곤 애엄마가 실은 범인이 아닌데 사람들이 살인자로 몰려서 곤경에 처하는 에피소드로 흐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진행된다.

애엄마는 실제로 이전에도 아들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를 뻔했는데 주변 사람이 막아서 저지된 일도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심문해도 애엄마라는 사람은 놀랍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보통이라면 나는 아니다. 누군가의 모함이다라고 반항하거나 왜 생사람 잡냐고 모른 척하는 뻔뻔한 행동을 해야하는데 자기가 아들을 죽였다고 시인 한 것이다.
이유는 '두 아들을 다 키우기엔 돈이 너무 드니 한 명만 기르려면 남은 한 명의 아이는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고백하고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를 살리기로'한다음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주인공도 이렇게 순순히 자백하는 태도가 너무 이상하다 여겼고 그대로 자료를 모아 신문사에서 기사가 나오길 기다리면 됐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 발생했다. 기자의 상관이 주인공 기자를 무식한 사람 취급하며 놀려대기 시작한 것.

"아니, 왜 살인까지 자백한 마당에 그녀를 잡으면 무슨 문제라도 발생합니까?"에 대해서 상관이 말한 것은...

"그녀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면, 전국의 모든 어머님들이 살인을 저지르게 될 거야"라는 말로 받아친 것.

그 이유로는...

1. 실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어머니들이 많다.
2. 어머니들은 방법을 모를 뿐이지 아이들을 얼마든지 죽이고 싶어한다.
3. 모성본능은 광고업자들이 만든 환상일 뿐! 상관인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주인공 기자의 어머니도 모성이 없을거라 매도
4. 그런데 이 살인사건이 퍼져나가면 살인을 마음먹은 어머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
5. 아이들을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로 인한 사회혼란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인공 기자에게 갑작스럽게 기사 내용 자체를 바꾸라고 명령한다.

"그저 어린애 한 명이 길가다가 날이 어두워서 앞을 제대로 못 보고 발을 헛딛여 물에 빠져 죽은 사고사"라는 것으로..
이 부분을 읽은 나도 당혹스럽고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기자는 반항 한 번 못하고 싸그리 기사가 바뀐 채 전국으로 나간다.

사람들은 아이가(온몸이 묶여서 발견됐음에도) 그저 실수로 물에 빠져 죽은 걸로 알게 된 것.

주인공 기자는 분개하며 짜증내며 절망하며 형사한테 하소연한다. 하지만 형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A. 이 지방도시엔 애엄마를 비롯해 5명의 여자들이 매춘부로 활약한다.
B. 애엄마는 기자의 상관도 좋아하는 여자다. 좋아하는 이가 사라지면 더 괴로울 것이다. 경찰들들에게도.
C. 애엄마가 (경찰에 잡혀 감옥가는 것으로)사라지면 그 만큼 남은 4명의 매춘부들이 힘들어진다.
D. 그 만큼 일반 가정의 딸을 둔 가정집들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걱정할 수 밖에 없다. 아가씨들이 위헙해질 수 있으므로;;
E. 애엄마가 사라지면 남은 한 명의 아들은 고아원에 거두어져 나쁜 아이로 자라날 것이고 조폭이 될 수도 있다.
F. 모두에게 피해가 가므로 일부러 이 상황을 방치하고 아무 일도 없듯이 지나가게 하라고 충고하는 것;;

형사는 "사람들은 진실이 밝혀지거나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안정적인 상화이 계속 이어지는 것 그거 하나다. 그것을 위해선 어떨 때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라고 일갈하며 결국 기자는 찝찝한 마음을 완전히 털고 이 사건에서 손을 뗀다. 진실은 알려지지 않을 때도 있어야한다라는 건 주인공 기자의 상관도 말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다른 도시에서 어린 아이가 비닐에 담겨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뉴스가 뜬다. 그런데 이에 대해 마지막 서술은 사건의 끔찍함, 아이의 고통보단 "이 사건을 발주한 기자는 앞으로 수 많은 모방범죄가 일어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을까?"라는 말로 끝낸다. 범인의 잔혹함보단 이 에피소드의 찝찝한 '현실주의'를 우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서술되면서 끝난 것이다.

그래서 더욱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진실보단 안정을 원한다라... 결국 마지막 부분까지 읽으면서 생각나는 여러가지 사건도 떠오른다.

당장 '섬노예' 사건을 보더라도 이와 비슷하다. 주민들이 생계 핑계로 혼란을 핑계로 잔혹한 인권유린을 해결하지 않고 그것을 더욱 조장하는 것. 경찰과 공무원 모두가 한통 속이라는 점도 '작은 사회'의 무서움을 보여주는데 이 에피소드의 배경도 지방 도시이지 않은가? 파리에서 일어났으면 달랐을까?

그 외에도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보다는 중국편을 들면서, 그리고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난리를 치건 말건 우린 이 문제에 신경 끄고 딴청이나 피우며 시간이나 떼워야 한다. 중국을 도와 더 탈북자들을 짓밟아야 만 한다'라고 좀 심장과 머리가 서로 맞지 않은 짜증나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리고 더 쓸쓸한 걸로는 과거 다에쉬 IS 놈들이 떵떵거리던 2014~15년. 그들이 점령한 도시에선 무서운 철권통치가 일어남에도 그놈의 물가, 생활 안정 덕에 주민들이 오히려 이라크, 시리아 정부시절보다 다에쉬의 통치를 반겼다는 것까지... 

이 모든게 생각났기 때문에 '안개 속의 살인'은 가장 찝찝한 에피소드가 됐다. 애엄마가 대놓고 살인을 저지르고 주변인들이 그 진실을 다 알고 있어도 조사 한 번 받지도 않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로 풀린 것도 아니고 아예 조사조차 안 일어나고 끝난 것이니까;

아쉬운건 이에 대한 리뷰, 소감을 따로 찾아보려 해도 한국 웹에선 그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천재군~ 좋아~ 음.."이런 말만 나오고 이야기에 대한 관점이나 분석은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딱 하나 찾은 곳에선 발견한 어떤 분의 리뷰에선 "아니, 애엄마란 인간이 꼭 그 아이를 죽여야만 했나? 입양이나 최악의 경우 아이를 파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정 경제때문에 그래야했다면 애는 대체 뭐가 죄냐고..."라고 성토한게 전부. 그 외에는 '언론의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 정도 밖에 안 보였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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