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3 03:11

故남경태 선생님의 역사특강 (동서양 차이) 이세계의 고문서 (장문)

성리학자 중에서도 그나마 개혁적인 이들.txt


이 강연 자체는 2013년 6월 20일에 송파도서관에서 들은 강연을 요약한 것입니다.
(남경태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1년 6개월 전이었네요)




*동양에서 모든 땅, 재산은 '왕'의 것이다.

*당장 한국의 전시과, 과전법만 해도 관리에게 '수조권'을 주는 것이다.
(동양 왕조들은 토지 문제로 나라에 큰 병이 나는 모순이 일어났다)

*재산권의 경우... 서양은 '계약', 동양은 '소유'의 개념.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축첩'. 서양은 '1:1 혼인' 개념이었다.
동양은 혈통이 끊어짐이 걱정되지 않았으나 왕자의 난이 서양에 비해 많이 발생했다.
'혈통에 집착'한 부작용이었다.

*과거제는 실은 맹점이 많은 제도.
남성의 직업 소득이 관리의 녹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 것.

*서양은 견해와 문제를 제기하는 사고방식인 것에 비해
동양은 이미 많은 답을 맞추는 것에 알맞게 된 탓.

* 서양이 동양에 대해 놀랍게 생각한 점이 '중앙집권'.

*중세의 가톨릭 = 현재의 UN.

*동양은 지식을 지배층들의 지식보관용으로만 사용했다.
반면 서양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전파할수 있도록 민간내에서 인쇄하고 보급했다.

*계약, 투자 등의 개념은 지리, 역사적 차이(주식의 개념)로 인해 서양 '민간'에서 발생했다.

*은행의 역사는 신용의 역사. 도덕적으로 보지 말고 역사적으로 보자. 시스템의 정착과정을!

*각종 위험에 대한 대비는 보험으로 이루어졌다. (해상보험도 무려 4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님)

*고위층들의 도덕적 해이는 도덕적인 문재로 보지 말라.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도덕적 시각으로 보지 말라.

*이는 지배층들이 자신들이 베풀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류층들에겐 '의무'로 각인됐다.

*동양의 왕과 관료들이 의무가 없었던 이유는 룰이 달랐기 때문.

*왕=하늘이라는 사상으로 세상 자체가 개인의 것이었으므로 서양과 차이를 둘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 한국)

*서양도 처음부터 건강한 체제를 갖춘 것은 아니다. 계속 부딪혀 온 것이다.
혁명이 존재했으며 서양은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과거와 단절을 시도했다.
어떤 오점이 대물림되는 것을 끊어버리려는 시도다.

*21세기 이후 역사는 'Local'의 형식으로 돌고 돌것이다. 서로 영향 받고 영향을 주는 형식으로.




메모한 것은 이렇습니다. 3년 후에 읽어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덧글

  • 대범한 에스키모 2017/01/13 12:35 # 답글

    *동양은 지식을 지배층들의 지식보관용으로만 사용했다.
    반면 서양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전파할수 있도록 민간내에서 인쇄하고 보급했다.

    이걷 서양도 인쇄술이 발달하고 나서 이렇게 된거죠?
  • K I T V S 2017/01/13 12:48 #

    네. 동양이 더 빨리 기술을 개발했는데 지배층들끼리 돌려보기만 해서 뒤쳐젔다고 보는건 다른 책에서도 보이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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