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5 00:25

삽화발견 - 마르사나림과 페르키스 레페리아 세계전 (판타지)



BGM : Skyrim - "Legends of Hope" mod BGM #.2 
.
.
.
.
.


'마르사나림' 선여왕(先女王)은 셀리바레 화림들의 나라, 예크다르실의 존엄한 여왕인 '체르하나림'의 어머니였으며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산 인물 중 하나였다. '페르키스'(참조항목은 '수정전쟁'이다)는 북방제국 크로이우스 왕조의 18대 황제로 라소툰 공룡들 중 가장 수명이 긴 인물이었다. 그가 그 어떤 공룡들보다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화림들 밑에서 자라면서 마르사나림으로부터 '셀리바레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셀리바레의 축복은 그 어떤 종족이건 화림들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신의 은총이었다. 오랜 수명을 얻으면서도 그 어떤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 할 수 있었다. 공룡족의 평균 수명은 보통 700 ~ 900세가 기본이었지만 페르키스는 무려 1500세가 넘게 생존했다. 평균 공룡족들의 약 2배인 셈.

보통의 공룡 귀족들은 특히 황실과 가까운 귀족들일 수록 자신들만의 파벌 안에서 살아갔을텐데 페르키스만큼은 어째서 머나먼 화림들의 가장 고귀한 존재인 마르사나림의 품에서 키워진 걸까?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먼 옛날 초창기 크로이우스와 예크다르실을 이으며 두 종족의 화합을 꾀했던 귀족 가문의 후예가 페르키스였으며, 크로이우스 왕조가 오현제 시대를 거치면서 황제들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술수를 부리던 귀족 가문들에 질려 예크다르실로 귀순한 자들을 안타깝게 여긴 마르사나림에 의해 페르키스가 그 밑에서 견문을 넓힌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페르키스를 처음 돌보기 시작했을 때 마르사나림은 이미 7000세가 넘은 상태였다. 그녀는 예크다르실 왕국의 건국을 직접 목격한 인물 중에서 '신의 아이'께서 레페리아에서 탄생한 시간(즉 구세력 1년경)까지 살아있던 유일한 화림이었으며 페르키스를 공룡과 화림의 사상을 조화시켜 이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페르키스에겐 마르사나림이 어머니보다도 더 어머니같은 여성으로, 한편으로는 스승이자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이성(異性)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아한 성품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페르키스는 그녀에 대한 애정, 동경심을 더욱 키워나가면서 그 감성을 주변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으로 이어갔다.

당시 레페리아에선 사우레우스→ 클로피우스 → 쿠린티스 → 아시레우스까지 이어지는 용맹한 황제들(페르키스까지 합쳐서 '오현제'로 불렀다)에 의해 크로이우스의 국력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쿠린티스와 아시레우스의 정복활동은 온 레페리아의 민족들에게 경외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당장 신의 아이가 태어난 '홀론 왕국'이 멸망한 원인 중에도 아시레우스가 관련되었을 정도로 공룡들의 진격은 그 폐해가 심각했다.

페르키스의 역할은 공룡족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예크다르실 화림들은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두 종족이 나란히 이익을 보는 정치체제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아시레우스의 후계자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공룡 제국의 흐름을 바꿀 생각이었다.

아시레우스가 타락한 거대한 용 한명과 대결(벌을 받아 땅으로 떨어진 용공(公) 중 하나였는데 거대한 나라의 지배자와 싸우면서 죽는다는 예언이 돌았었다)하면서 갑작스럽게 전사하자 크로이우스의 지배자는 페르키스가 되었는데 그는 일단 아시레우스가 정복한 영토 절반을 라비나크, 렌티오, 인간, 크리트들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룡들은 함부로 다른 종족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을 도와야한다는 법률을 제정하고 가장 약한 인간과 벌레, 야수들의 탄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을 펼쳤다. 한편으로는 화림과 공룡들의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는 셀리바레의 축복과 페르키스의 고결한 마음 말고도 '신의 아이' 신앙이 본격적으로 레페리아 전역으로 퍼지는 것에도 연관이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자료가 있다. (단, 이 학자들은 신의 아이 신앙을 가진 이들이어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바쁘게 일하는 페르키스였지만 그는 시간이 나는데로 마르사나림 여왕을 방문해 그녀의 품에 안기길 원했다. 선여왕은 당신의 딸인 체르하나림보다 페르키스를 더 사랑했고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페르키스는 새로운 정책을 생각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페르키스는 800년 넘게 북방 제국을 통치했고 이 기간만큼은 레페리아 전역에서 그 어떤 전쟁과 전투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1기는 물론이고 그 어떤 시대를 살펴봐도 이 때만큼 장기간의 평화가 존재한 적은 없었다. 북방의 크로이우스부터 남방의 스크라트비와 크리트들의 포레세크루까지 어디에서도 군사적인 분쟁과 도적단의 창궐이 없었다. 멸망한 홀론 왕국의 잔류 인원들을 흡수한 로리스 소왕국은 인간들만의 국가로서 크로이우스와 예크다르실 사이에서 그들의 문화를 주고받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공룡들에 대한 다른 종족들의 관점이 두려움과 공포감에서 존경심이 우러나는 모습이 된 것도 페르키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일부 공룡들은 이런 상황을 반기지 않았다.

"지상에서 가장 강하고 똑똑한 우리 공룡들이 애써 다른 종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야만 하는가?"라고 의문을 품은 이들이 나타난 것. 이런 불만을 가진 이들을 모으면서 선동한 자가 애석하게도, 페르키스의 아들 '미레스'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면서 먼 옛날 아시레우스 시절의 강대하고 위엄넘치는 공룡들의 국가로 되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페르키스가 제 아무리 셀리바레의 축복을 받았다 한들, 늙어가는 걸 피할 순 없었기에 점점 판단력이 떨어지고 정책 상의 실수를 연발하기 시작하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실수를 트집잡아 그를 몰아갔고 마침내 자기 세력들을 끌어모아 페르키스를 협박하면서 그를 권좌에서 끌어냈다.

그래도 뼛 속 깊이 썩은 패륜아는 아니어서(...페르키스 못지 않게 나라는 잘 운영했기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까지 포함해서 공룡족 육현제로 부르기도 한다) 돈독히 노후를 편안히 보내라고 자금과 시종들을 붙이면서 궁궐에 발을 붙이지 말라고 했고 페르키스는 남은 여생을 마르사나림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신께서 미레스를 노여워했는지 그는 황제로 등극한지 230년도 지나지 않은 때에 중병에 걸렸으며 사경을 헤메다 자신의 딸과 사위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딸 밑의 아들 셋은 천덕꾸러기들이라 왕조의 앞날이 불투명했다. 페르키스는 비록 자신을 내쫒았지만 아들이라고... 늙은 몸을 이끌고 다시 크로이우스 땅으로 걸어갔다. 그게 그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결국 중병에 걸린 아들과 화해를 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한다. 그리고 아들 미레스, '프로미로우스'의 붕어를 눈 앞에서 지켜봤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죽어버린 것.

황실의 혼란을 뒤로 한 채... 늙은 페르키스는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마르사나림을 계속 보좌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동안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페르키스는 높은 위치의 황제나 밑 바닥의 거지나 끝은 슬프다는 고백을 마르사나림에게 전한다.

위의 그림은 바로 이 때의 장면.

세상이 분쟁없고 화목함으로 가득차길 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페르키스는 마르사나림 선여왕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거뒀다.
향년 1782세.
이전이나 이 후로도 페르키스만큼 오래 산 공룡족은 1명도 없었다.

그는 화림들 입장에서 볼 때, 가상적국의 황제였음에도 화림들의 땅에 묻힌 유일한 공룡족 정치인(21세기 지구인들을 비유로 치자면 중국 주석이나 일본 총리가 한국 어딘가에 묻힌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셀리바레의 친구'. 그렇다. 제1차 대륙대전의 승전영웅이었던 로리스 소왕국의 라나실 공주의 별명과 똑같았다. 그 어떤 공룡족 황제 중에서도 다른 종족과의 화합과 분쟁 억지 그리고 번영을 함께 노력한 인물은 페르키스말곤 거의 없었다. 이 점을 높이 여긴 화림들은 예크다르실 남쪽 땅에 마르사나림과 페르키스의 거대한 석상을 만들어 서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이 건축물은 제2차 대륙대전 중 레페리아를 절망의 땅으로 만든 헤도르이온 암흑동맹에 의해 파괴됐다.

그의 위용에 근접한 인물은 먼 훗날 제4기의 에스티우스 왕조를 빛낸 '크로논티누스' 황제 뿐.

페르키스가 세상을 떠난지 200년도 안 지나서 크로이우스 왕조는 손자 메라누스의 절망스러운 도박으로 인해 완전히 공중분해됐다. 저승에서 그는 조국의 멸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어찌되었든 역사가 흘러 마르사나림과 페르키스의 관계는 '종족을 초월한 사랑의 극치'로 평가받으면서 수 많은 레페리아의 극작가들과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고 낭만에 빠진 연인들의 동경 대상이 됐다.




-------------------------------------------
밸런타인 데이 기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의 글을 길게 써봤습니다. 비록 과거의 이야기지만.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덧글

  • 그레트헨 2016/02/15 01:57 # 삭제 답글

    슬픈 사랑 이야기 처럼도 느껴지는 일러네요.
  • K I T V S 2016/02/17 00:18 #

    동경과 사랑이 섞인 스승과 제자?
  • Megane 2016/02/16 15:45 # 답글

    삽화랑 글을 보면 확실히 극작가들이 침을 흘리기 딱 좋은 소재인 걸요? 우왓... 훌륭하다.
    씁쓸한 인생 고백 뒤에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했을 듯한 대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
  • K I T V S 2016/02/17 00:18 #

    황제도 오래살았지만 그를 키운 가상적국 여왕은 더 오래살았으니...
댓글 입력 영역


네이버 이웃커넥트

이글루스 검색기


저작물 위젯 달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yzen저작물
본 CCL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